비웃음

by 김동휘

5년 만에 신용산역에서 내려 용리단길을 걸었다. 대학생 때 자주 지나다녔던 곳. 지난 5년 간 내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뜬금없이 배우가 되겠다던 5년 전의 결정은 배우로서 그럴듯한 성공도, 배우로서 활동의 재미도 모두 놓친 채 어느새 나름대로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직장에서 선배가 되어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돌이킬 수 없는 실수 같은 것처럼 느껴지게 됐고,


배우로서 활동도 마음 속으로는 이미 접어 두었고 친구들을 만나 할 이야기도 없는 나는 그저 정말 오랜만에 이 곳에 나와보았을 뿐이다.


이 곳은 내가 이 곳에 발길을 끊기 시작할 때쯤부터 유행하는 ~리단길 식의 이름이 붙더니 갑자기 20대의 핫플레이스가 된 곳이다.


그 덕에 생각했던 것보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약간의 지친 기분을 느끼며 길목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여자가 보였다. 친구 두 명과 같이 카페에 온 듯했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어보였다. 나는 계속 걸어가면서 그녀를 잠시 쳐다보았는데 자연스럽게 이룬 것도 없이 나이만 먹은 내 처지가 생각나고 위축되는 기분이 들면서 언감생심이라는 사자성어가 머리에 맴돌아 일부로 걸음을 좀 더 빨리 해 그 골목을 지나쳐갔다.


그녀가 내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분명하지만, 아마 후술할 일이 없었다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우연인지, 얼마 뒤 한 유명 미국 가수의 내한 공연장 앞에서 열린 플리마켓 부스 중 하나에서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었다. 플리마켓 주변에서는 한껏 꾸미고 온 20대의 커플들과 쇼미더머니 출연자 같이 입고 온 사람들, 어린 자녀와 함께 온 듯한 부부도 보였다. 다들 기분이 좋아보였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 같아 보였으며 이런 곳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아는 것만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플리마켓은 그냥 지나쳤겠지만, 다시 오지 않을 흔치 않은 우연으로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반쯤은 나도 모르게 그녀가 있는 플리마켓 부스로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가니 그녀는 다른 남자 한 명과 같이 부스를 운영하고 있는 듯했는데, 그 남자는 힙한 옷을 입고 있었고 건장했으며 표정도 밝은 것이 그녀와 잘 어울려 보였다. 나는 위축되는 기분을 느끼며 갈 곳 잃은 손을 아무렇게나 뻗어 무언가를 집으며 말했다.


"이건 얼마에요?"


살짝 고개를 들어 본 그녀는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다시 내 모습을 생각해보니, 되는대로 기른지 5개월이 넘어 지저분해 보이는 머리, 최근 더 심해진 거북목 탓에 어딘가 빈해 보이는 느낌을 주는 오버핏 티셔츠, 모두가 즐거운 공연장에 어울리지 않는 음침하게 쭈뼛거리는 태도 같은 것들이 의식됐다.


나는 급하게 뒤돌아서 부스를 나왔다. 아마 그녀는 더 노골적으로 불쾌한 것을 본듯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뒤돌아서 멀어지며 들린 말소리가 나를 비웃는 내용이었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때 나에겐 나를 비웃는 것이 확실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무너졌다.


나는 그대로 집에 돌아와 스마트폰도 들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누워 있으니, 조용한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오간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비웃음 당하고 싶지 않아도 비웃음 당할 일이 있으면 비웃음 당할 수 밖에 없는 거고...마음 상하고 싶지 않아도 마음 상할 일이 있으면 마음 상할 수 밖에 없는 거야...미리 걱정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피하려고 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비웃음 당하고 마음 상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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