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알프스. 강원도의 자존심. 강원도의 리조트에 3년 만에 스키를 타러 왔다. 스키를 대여하고 눈밭에 서보니, 처음 스키를 탔을 때처럼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게 느껴졌다.
익숙하다는 듯이 앞서 나가는 일행을 따라가기 위해 약간의 조바심을 느끼며 기억을 되살려 발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그리 어렵지 않게 가벽에서부터 리프트까지의 눈 쌓인 평지를 오갈 수 있게 됐다.
새벽 4시 반이 막 지난 시간인 만큼, 리프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잠깐 딴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리프트에 올라 탈 수 있었다.
일행은 어릴 때부터 자주 스노보드를 탔고 여전히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능숙하게 보드를 타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어설프게 A자세 정도를 할 수 있을 뿐 스키를 잘 탄다고 할 수는 없는 초보였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며 초심자 혹은 중급자 코스로 가자는 말을 꺼내기에는 아무래도 겸연쩍어 자연스럽게 상급 코스의 리프트에 올라타게 되었다.
리프트가 꽤 높은 위치, 아마도 전체 코스의 절반 정도의 거리를 이동했을 때 갑자기 예상치 못한 마찰음이 들렸다. 쇠와 쇠가 부딫히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는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하게 리프트가 멈췄다. 뒤 쪽에서는 여자의 비명 소리인지 바람이 만드는 소리인지 구분이 안 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 번 더 예상치 못한 마찰음이 들렸다. 이쯤 되니 리프트가 추락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심각하게 들기 시작했고 나보다 몇 십 배는 스키장에 많이 와봤을 일행도 꽤나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듯했다.
한 번 더 예상치 못한 마찰음이 들렸을 때는, 동시에 리프트가 갑자기 흔들렸는데 몸에 소름이 돋고 피가 머리에 쏠리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머릿속에는 왜인지 부처님이 떠올랐다.
"나도 몰랐지. 이렇게 죽을 줄은." 부처님이 나를 보고 말했다.
부처님까지 사망 선고를 내리는 것을 들으니 이제 정말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왠지 모르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겨우 이렇게 죽는다고? 내가 당신 말을 많이 믿었는데, 이래서는 속은 거잖아?"
"나라고 네 인생을 다 아나. 나도 한 번 살아봤을 뿐인데."
"좀 더 빨리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부처는 어깨를 으쓱하며 눈을 뜬 건지 안 뜬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실눈을 내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은 중학생 때 나한테 빌려간 줄자를 잃어버리고 이미 일어난 일을 어쩌겠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던 동창생을 떠올리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수를 믿을 걸 그랬어. 청년부에 여자도 많다던데."
"예수라고 두 번 사나? 다 똑같지 뭘."
"예수는 두 번 살았다던데."
"한 번이나 두 번이나."
그때 갑자기 리프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프트는 그대로 다시 멈추는 일 없이 올라가 원래의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는 먼저 내린 사람들이 고등학생처럼 어려 보이는 스키장 스태프용 조끼를 입은 직원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오작동' '죄송' 같은 말을 주워 들은 뒤에는 별로 들을만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스키를 타고 코스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오면서 보이는 하늘에는 어느새 해가 조금씩 뜨기 시작했고 구름 뒤로 이제 막 뜨기 시작한 햇빛이 비치며 마치 구름이 주황색과 빨간색 사이의 어떤 색을 띄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 와중에 비슷한 모양의 두 구름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떠 있었는데, 조금 전 리프트에서 꽤 생생하게 떠올랐던 부처의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인지 그 두 구름이 부처의 웃음기를 머금은 실눈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