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의 운명

by 김동휘

세상에는 다양한 쌍둥이가 있다. 그냥 쌍둥이. 세쌍둥이. 유전적 쌍둥이. 정신적 쌍둥이. 후천적 쌍둥이. 일시적 쌍둥이.


이 다양한 쌍둥이들의 공통점은 결국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하는 수많은 정량적, 비정량적, 가시적, 국제적, 외견적, 심리적... 수 많은 지표들 중 대다수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쌍둥이라도, 사소한, 아주 작은 차이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고 때로는 그 사소한 차이가 쌍둥이의 운명을 전혀 다른 길로 갈라놓기도 한다.


저렇게 똑같은 쌍둥이가 저렇게 다른 운명을. 남보다 더 다른 운명을 맞다니.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제외한 차이점을 찾기 쉽지 않은, 100m 떨어져서 보면 똑같아 보이는 저 둘이 말이다. 똑같은 유튜버를 구독했고 똑같이 어쩌다 추천 받은 네빌 고다드의 책을 20페이지 가량 읽었고 똑같이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등에 라이트훅을 꽂는 3살 위의 형을 두고 자라온 저 둘이 말이다.


마침 쌍둥이를 기억하는 두 사람이 인근 스타벅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와 피부 좋아진거 봐. 결혼하고 더 예뻐졌어."


"언니는 살이 왜이렇게 많이 빠졌어? 요즘도 키토제닉 다이어트해?"


"아니. 그냥 입맛이 없으니까 살이 막 빠져. 어떻게 해."


"왜. 왜."


"영완이 알지?"


"응. 언니 남친 아니야?"


"갑자기 결혼 생각이 없대."


"미친 거 아니야? 갑자기?"


"응 대놓고 얘기한 건 처음. 나는 그래도 설마 했다. 만나다보면 생각이 정리되겠지 했는데, 갑자기 뭐 결혼 비용이니 자산 계획이니 뭐 묻지도 않은 돈 얘기를 막 하다가 결국 결론은 자기는 결혼 생각이 없다는 거야. 혼자 심각한 얼굴로 막 뭐라 떠드는데, 어이가 없어서. 나 진짜 주먹 나갈 뻔 했잖아."


"요즘 그렇더라. 내 동네 친구 중에 하영이라고 있거든, 걔도 언니랑 똑같애. 남친이 돈 없어서 결혼은 못하겠다고 차라리 빨리 헤어지자 했대."


"그래서 요즘 입맛이 없어. 지금 헤어지면 또 어디가서 남자 만날지도 모르겠고."


"언니 내가 남편 친구 중에 괜찮은 남자 한 명 알아볼까?"


"남편... 아 남편은 어떻게 만났다 그랬지?"


"나는 결정사. 거기 요즘 되게 유명한 데인데, 언니도 차라리 결정사를 한 번 가볼래?"


"결정사? 모르겠다. 나는 좀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은데."


"그럼 소개도 좀 그래? 언니는?"


"소개는 좀 낫지. 좀 알고 만나니까. 그 남편이 무슨...아니, 남편 만난 얘기 좀 자세히 해 줘 봐."



처음 봤을 때, 당연한 얘기긴한데 이 사람이 나랑 결혼하겠구나. 이런 생각은 전혀 안들었어. 재산이나 직업, 집안 학벌 이런 건 다 대충 알고 간 거고 외모도 보니까 무난한데 그렇다고 막 꽂히는 건 없었거든. 나도 결정사 처음도 아니고, 이미 기대하고 갔다가 안 된 적도 몇 번 있고 하니까 더 그렇기도 했고.


그래서 그냥 초반엔 좀 밋밋하게 얘기했었는데... 남편이 좀 노잼이야. 어쩌다가 주량 얘기가 나와서 잘 마신다고 했더니 기다렸던 것처럼 소주도 괜찮냐 그러더라고. 근데 이게 언니도 알잖아. 나 취하면 말 많아지는 거. 그 날도 취해서 그냥 별 얘기 다 한 거야.


그 날 그... 언니 혹시 기억나? 이만균이라고 내 동기. 네이버 보니까 걔가 기사가 났더라? 늦깎이 라이징스타? 뭐 이런 걸로.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유명한 드라마도 많이 나왔더라고. 이번에 넷플릭스 드라마 들어 갔는데 임팩트가 좀 있어서 기사가 난건데... 아무튼 나는 걔를 알잖아. 대학 다닐 때 과에 뭐 거의 매일 클럽 가고, 뭐 호스트 알바한다는 얘기도 있고, 술 값 안내려고 담배피는 척 가방 챙겨서 튀던 애들. 진짜 쟤네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구나 했던 애들이 한 무더기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였던거. 그니까 술 먹다가 나도 왜인지 모르겠어. 갑자기 오늘 걔 이만균 기사 본 게 생각이 나서 지금 남편한테 그 얘기를 막 한 거야. 걔는 인생을 그렇게 막사는데도 뭐가 자꾸 일이 잘풀리고 나는 클럽도 한 번 안가보고 에이쁠 받으면서 학과 생활 했는데 아직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기분이 더럽다. 뭐 이런 식으로.


근데 내가 취해서 혼자 막 떠드는데 옆에서 별 말 없이 그냥 잘 들어주니까 나도 모르게 더 신나가지고 계속 떠들게 되더라고. 아까 내가 그 학과에 한 무리 있었다고 했잖아? 그 내일은 없는 무리. 그 중에서도 이만균이랑 맨날 붙어다녀서 약간 쌍둥이 같은 느낌이었던 애가 있었거든? 김안철이라고 둘이 키도 비슷하고 옷도 비슷하게 입어서 더 그랬는데. 근데 걔는 3학년 때 술 먹고 운전하다가 전봇대를 거의 120km로 들이 받아서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어. 근데 그게 원래는 둘이 거의 맨날 그 새벽 시간에 같이 그 차를 타고다녔거든? 둘이 클럽 갔다가 강남에서 연남까지. 차도 이만균 차야. 09년식 중고 아반떼. 진짜 원래 안 가면 안가지 이만균만 빠진 적이 거의 없는데, 운이 좋았다고 하긴 좀 그런데 아무튼 딱 그 날 이만균이 빠진 날 사고가 난 거지.


이게 사실 남편이랑은 아무 상관 없는 얘기잖아. 진짜 나 혼자 취해서 신나서 떠든거야. 나도 어차피 내 맘대로 매칭이 되는 게 아니니까 그냥 좀 마음이 비워졌나봐. 뭐 잘 보여야겠다 이런 생각이 안 들고 그냥 막 얘기하고 싶더라고.


다음 날 일어나니까 숙취 때문에 막 머리는 아픈데, 너무 혼자 신나서 쓸데 없는 얘기까지 한 것 같아서 쪽팔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혹시 뭐라 연락이 왔을까 해서 폰을 보니까, 너무 즐거웠다고 다음에 언제 다시 볼 수 있냐고 톡 와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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