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 출소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속된 것이 지난 대통령 선거 때쯤이니까, 거의 3년만에 감옥에서 나오는 셈이다. 감옥도 사람이 못 살만한 곳은 아니겠지만 보기보다 곱게 자랐고 군대도 면제 받은 K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을 보이며 부적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진지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K가 정확히 어떤 죄목으로 구속된 건지는 잘 모른다. 비트코인과 관련이 있고 K 본인은 억울해한다는 것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당연히 억울할 것이다. 관행처럼 여겨지던 것이 어느새 범죄가 되어 있고 모두가 하는 일 같았지만 감옥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은 어느새 나 하나 뿐인 그런 일이 K에게 한 번 더 반복 된 게 아닐까.
3년만에 다시 본 K는 3년 전에 봤던 모습과 거의 똑같았다. 겉모습도 그렇고 만나기 전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말이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봐도 고생한 티가 난다거나 억울해 보인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직장도 재산도 잃고 전과가 생긴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게 즐거워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알던 K와는 다른 사람 같은 느낌이 들어 나는 이 위화감의 원인을 추적하기 위해 K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더 좋아 보인다?"
"뭐. 나쁠 거 없지."
"아니 뭐, 좋은 소식 있는거야?"
"무슨 소식?"
"아니 뭔가 좋아 보이는데. 뭐 복직 된다거나. 어디 돈 나올데가 있나 했지."
"없어 그런거. 진짜 제로야."
"그럼 이제 뭐하고 지내게?"
"베트남 가. 거기서 새로 사업하는 형 있어. 그 형이랑 같이 일할듯. 그게 한 10월 11월이니까 그 전까지는 그냥 뭐 없지. 운동하고 명상하고."
"뭔 명상? 명상을 해?"
"명상 효과 좋아. 명상이라도 안 했으면 그 안에서 완전 fucked up 됐을 걸."
"아니 그게 진짜 효과가 있나보다. 아까 처음 너 봤을 때, 말하는 것도 그렇고 약간 구루 같은 느낌 들었어. 그게 명상 효과? 어떻게, 맨바닥에 앉아서 하는 건가?"
"그런 건 상관 없어. 뭐 자세, 호흡 이런 거는 그냥 글 쓰는데 무슨 펜 쓰냐, 뭐 먹고 쓰냐 이런 느낌인거고. 하나만 알면 돼. 그냥 가만히 있는 거. 몸은 가만히 있어도 생각은 맘대로 안 멈추겠지? 그건 그냥 냅둬. 별 이상한 생각만 들어도, 다른 생각 하려고 하지 말고.
그 가만히 있는다는 게 말하자면 외부 자극을 최대한 줄이는 거거든. 외부 자극을 줄이는건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고 그러니까 뭐 뛰어다니는 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 더 마음 편하면 뛰어 다니면서 명상을 해도 되는 거고 앉아 있든 누워 있든 그런 건 알아서 하면 되는 거지. 특히 중요한 건 무슨 생각이 떠오르든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지 말라는 거야. 결국 명상으로 끄집어 올려야 되는 생각은 대부분은 별로 자랑스러울 거 없는 생각들이란 말이야. 그거를 처음부터 떠오르지도 못하게 막고 있으면 명상을 하는 의미가 없지. 변해야 하는 생각. 억눌러왔던 생각. 알아야 하는 생각.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그런 건 못해. 나 쇼츠도 끝까지 못 봐."
"그래 뭐. 아무튼 난 감옥에서 돌아왔다. 명상 덕에 이렇게."
아무래도 나도 감옥에 가지 않는 이상 명상을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명상보다 검증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수 백가지는 안다. 안 하 거나 못 하거나 그럴 뿐이지.
식사를 마치고 나는 나대로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K는 감옥에서 디지털 디톡스를 제대로 했는지 스마트폰을 한 번도 꺼내질 않았다. 문득 나는 꽤 긴 시간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는 K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져 고개를 들어 K쪽을 바라봤다.
“저 ㅎㄱ…조각… 있으ㄹㄹ“
“응?”
너무 작은 소리라 모르고 있었는데, K쪽을 보니 K가 반쯤 눈을 감고 들릴듯 말듯 한 소리로 뭐라 말을 하고 있다. 명상을 한다더니 아예 속세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어 서울 한복판에서 주문까지 외우는 걸까? 그렇다면 아무래도 감옥의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K를 바라보았다. K는 차분해보였다. 너무 차분해서 조각상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나는 내 쪽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한 K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A가 하는 말을 들어보았다.
“저 허공을 ...ㅎ...조각처럼 ....치울 ...ㅅ.... 끝낼 수 있으리라."
꽤나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저 허공을 한 장의 ... 조각처럼 둘둘 ... 치울 ... 있다면 그를...ㄲ...못하고도 ㅅ... 끝낼 수 있으리라."
이제 나는 거의 K의 얼굴 앞에 내 귀를 대고 있다.
“저 허공을 한 장의 가죽 조각처럼 둘둘 말아 치울 능력이 있다면 그를 깨닫지 못하고도 슬픔을 끝낼 수 있으리라."
아무래도 K는 내가 알던 K와는 생각보다 더 많이 다른 사람이 되버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