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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Jun 18. 2024

10년대 힙합

학창시절 나에게 연예인은 래퍼들이었다. 


새 노래가 나오면 찾아보고, 쇼미더머니에 내가 알던 래퍼가 나왔다는 소식에 다음 화를 기다리고, 힙합 커뮤니티에서 이런저런 소식을 접했었다. 


힙합씬이라는 것은 하나의 사회다. 나가는 사람이 있고, 개성있는 사람이 있고, 고집 사람이 있고, 외국물 먹은 다양한 사람이 있는 사회.


그 사람들이 각자 음악적으로 잘 풀리기도 하고, 방송적으로 잘 풀리기도 하고, 자기만의 시장을 개척하기도 하고. 동시에 신곡이 조용히 묻히고 사라지기도, 범죄든 사회적 물의든 건강 이슈든 각자의 문제로 슬럼프를 겪거나 은퇴하기도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지던 시기의 힙합씬은 조금 특이한 면이 있는데, 예술성과 비슷하면서 다른 힙합 정신과 대중성이 대립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힙합정신을 강조하는 언더그라운드 래퍼와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오버그라운드 래퍼를 나눠 언더그라운드 래퍼는 자부심을, 오버그라운드 래퍼는 돈을 가지는 구조였다. 


엠씨 몽이나 마이티 마우스 같이 예능도 나오고 보컬 피처링을 넣고 후크 구절로 포인트를 주는 사랑 노래를 주로 부르는 사람들은 오바그라운드 래퍼.


버벌진트, 스윙스, 도끼, 빈지노처럼 티비에는 거의 나오지 않고 미국 본토 힙합에서 나올 법한 언더독의 분노나 사회 비판, 힙합 정신에 대한 노래를 주로 부르며 힙합팬층이 참여하는 비교적 소규모 공연을 하는 래퍼들이 언더그라운드 래퍼. 


그러다 쇼미더머니가 힙합신에 주는 영향이 커지면서 이 구분은 모호해졌다.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말하며 티비엔 안나간다던 래퍼들이 쇼미에 나가고, 언더그라운드에서 가장 잘 나가던 래퍼들이 쇼미더머니를 통해 힙합팬층 만의 연예인이 아니라 대중 연예인이 되고. 아이돌 래퍼가 쇼미더머니에 나와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을 제끼고 우승한다. 


쇼미더머니에서 래퍼들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커지는 시장에 자연스럽게 편승하는 래퍼.


타협을 인정하지 못하고 패잔병 같은 모습으로 쇼미에 나와 가사를 절고 떨어지는 1세대 래퍼.


언더 오버 구분 같은 것엔 관심 없이 '심심해서 나왔다' '나를 증명하러 나왔다' '돈 벌려고 나왔다' 는 래퍼.


지금 와서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쇼미 초창기 래퍼들에겐 당연하지 않았던 이야기는. 쇼미더머니는 악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힙합신을 키우고 래퍼들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닥터 드레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티비엔 나가지 않는다'를 자존심으로 삼아왔던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에게 쇼미더머니에 나간다는 결정은 쉽지 않은 결정일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서 스윙스는 '자존심? 돈 벌어서 엄마 건강이나 챙겨' 하면서 쇼미에 나왔고.


도끼는 '난 쇼미에 이용당하는 게 아니라 내가 쇼미를 이용하는 것' 이라며 나왔다.


그리고 그 둘은 초창기 쇼미더머니를 통해 가장 성공한 래퍼들인데. 나는 그 이유중 하나가 곤조라고 생각한다.


곤조가 없는 사람. 곤조를 무시하는 사람. 곤조를 무조건적으로 지키는 사람. 곤조가 있다면서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쇼미를 만났을 때 곤조는 아무것도 아니거나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


 하지만 그 곤조를 가지고. '지금은 내가 숙이지만 내가 어떤 곤조를 가진 사람인지 보여주겠다' 혹은 '너희가 뭐라하든 나는 내 방식대로 곤조를 지킨다' 는 사람에게 곤조는 에너지가 됐고 멋이 됐다. 


여담이지만 래퍼들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할 때 나는 나름대로 안목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몇 곡 듣고 래퍼의 이미지를 보면 이 래퍼가 대중적으로 뜰지, 아니면 마니아층의 전유물이 될지, 얼마 못가 사라질지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느정도 잘 맞췄던 것 같다.


그 즈음에 기억이 나는게 도끼다. 나는 도끼를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냥 이상한 쇳소리를 내고 재미없는 주제로 랩하는 래퍼로. 그러다 쇼미더머니가 나오고 래퍼들이 뜨기 시작할 때 우연히 멜론에서 도끼의 노래가 재생됐다. 


여전한 쇳소리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도끼를 보며, 얘는 절대 대중적으로는 안 되겠다. 고 생각했는데...왠걸? 불과 몇 년 지나지도 않아 멜론차트 1위를 하고 온갖 예능에도 나오며 한국에서 가장 핫한 음악인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쇳소리를 내는 것도, 알 수 없는 주제로 랩을 하는 것도 똑같은데. 절대 안 먹힐 줄 알았던 도끼의 음악과 스타일이 왜인지 먹히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도끼에게서 절대 안 되는 건 없다는 걸 배웠다.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무언가를 성공하기 위해 중요한 건 성공 공식을 어설프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믿는 방법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것.


좀 오버일지도 모르지만 도끼는 결국 많은 사람들이 한국적인 기호에 맞춰 자신의 스타일을 바꿀 때 오히려 한국적인 기호를 자신에게 맞게 바꾸어버렸다. 


지금도 사랑 노래도 아니고 유명 여가수의 피처링도 없는 랩음악들이 인기를 끌 수 있는데는 도끼의 그런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힙합씬은 나에게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흥망성쇠를 가르쳐준 하나의 삼국지이자 교훈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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