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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Jun 17. 2024

시체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천재란 무엇인가? 비범함으로 사회에 큰 기여를 하는 인물이다.


사회에 기여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을 더 살만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즐겁게. 마음 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범이란 무엇인가? 비범은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평범이란 무엇인가? 주어진 틀에 맞춰 사는 것이다.


애초에 모든 사람은 비범함을 가지고 있다. 평범함을 넘어 비범함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평범해지는가?


비범함의 양면성 때문이다.


비범함이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드러날 때, 단기적으로 이득이 되는 방식으로 드러날 때, 사회의 주류 여론 혹은 권력층의 기호와 합치되는 방식으로 드러날 때는 비범함은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권장되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날 때, 단기적으로 손해가 되는 방식으로 드러날 때, 그 당시의 여론이나 권력층의 기호와 맞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날 때는 몰매를 맞는다.


비범함이라는 것은 한 인간의 개성이고. 한 인간의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사회적인 필요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과나무가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고 매일 열매를 맺을 수는 없는 것처럼.


한겨울에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나무를 욕하는 사람은 없다. 사과나무는 열매를 맺고 있건 열매를 맺고 있지 않건 고마운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비범한 사람은 그렇게 항시 고마운 존재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한 가수를 보았다. 노래를 발표하고 공연을 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만. 곧이어 대마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폭력적인 연애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욕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날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비범함이란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위로 뻗은만큼 아래로도 뻗는 것이다. 비범함은 칭찬과 존경을 불러오다가도 비난과 경멸을 불러오고 그러다가도 다시 칭찬과 존경을 불러오는 것의 반복이다.



비범하게 산다는 것은 평범한 것과 마찰을 빚을 확률을 품고 산다는 것이다. 비범한 것끼리의 마찰은 서로 다른 것 사이의 마찰일 뿐이지만. 평범한 것에게 비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이 된다. 틀린 것은 강제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며 존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역사 속에서 비범함을 드러내며 산 인물의 사례를 두 가지 찾았다. 하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그는 그가 속한 사회의 분위기를 무시한 채 비범함을 추구했기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했다.


두 번째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다. 그는 갈릴레이처럼 '신이 뭐라하든 지구는 돈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신이 사실은 지구가 돈다고 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는 갈릴레이보다 더 비범한 주장을 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 생각에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기준에 맞춰 비범함을 드러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갈릴레이처럼 '신이 뭐라하든 과학이 짱이다.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고 하는 대신. 에크하르트처럼 '사실은 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볼 수 있다.' 고 말하면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갈릴레이처럼 말하면 곧바로 종교법정에 끌려가지만 에크하르트처럼 말하면 이단심문관들도 어리둥절해 한다. 이단 판결은 당신이 죽은 후에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 되면 이미 당신은 당신의 역할을 다 한 뒤인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그 자신이 설교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당신도 나름의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 이 사회의 신이 어떤 존재인지. 이단심문관들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중세 시대 유럽인이 신을 대하듯, 현재의 사람들이 존중하는 것은 도덕이 될 수도 있고. 돈이 될 수도 있고. 국가가 될 수도 있고. 종교가 될 수도 있고. 논리가 될 수도 있다.


말을 하는 데 있어서 말장난이나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 자신도 진심으로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비범함을 따르는 것. 솔직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은 좋다. 그리고 그럴 땐 공익을 추구하는 사회인으로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있으면 좋다.


명분에 중요한 것은 논리고 이성이다. 어찌되었던 자신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원래라면 비난 받고 제지되었을 법한 행동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의 비범함이 좀 더 자유로워질수 있도록 명분을 준비하라. 비범함이란 당신의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것이지만. 명분은 나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혹자는 '명분이 있는 일이란 건 결국 고루한 일 아니에요?' 라고 물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신의 말씀이라며 고루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기는 하지만 에크하르트는 신이라는 명분을 챙기면서도 할 말을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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