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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Jun 24. 2024

도망치듯 퇴사

나는 반 년 정도 기자 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 당연히 처음부터 반 년 후에 퇴사할 생각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 향후 몇 년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만두게 된 이유 몇 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발제 스트레스다. 기자라면 당연하게도 매일 자기가 기사를 발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자기가 담당하는 좁은 분야 내에서 발제 거리를 찾아야 된다. 그 분야 역시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창의력을 발휘하고 전문성을 발휘해 나만의 발제 거리를 찾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 된다.


게다가 기자는 발제 거리에 있어서 선배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연차에 상관없이 대부분은 발제거리가 없어 발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찌저찌 매일매일 발제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로는 나름대로 루틴화된 발제 거리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기업의 실적 발표라던가. 분기별 통계 발표라던가. 발제거리가 될만한 보도자료라던가.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발제를 넘길 수 있는 주제들이 있다. 노하우가 쌓이면 이런 걸로 발제를 매일 넘기는 것도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매일 기사를 써서는 구조조정-만약 있다면-대상 1순위가 되기 딱 좋다.


두 번째로는 우라까이다. 우라까이는 기자들이 많이 쓰는 용어인데. 사실상 베끼기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처음 우라까이를 접했을 때는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당연하다는듯이 다른 곳의 기사를 보고 말만 고쳐 내 기사로 작성한다는 게 범죄행위처럼 느껴졌다. 주변에 물어봐도 그럴듯한 명분을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다 그런 식으로 한다' 던지 '지면을 채우기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 던지 이유보다는 합리화에 가까운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이 우라까이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기자를 그만두는 데 한몫을 했던 것 같다. 우라까이와는 상관이 없어진 지금 나름대로 우라까이에 대한 변호를 해보자면 우선 이미 기사의 개수가 사안의 주목도를 판별하는 하나의 지표처럼 자리잡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떤 우발적인 사건이 터지면 그것에 대한 수십개의 기사가 다섯 시간도 안 되서 쏟아진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당연히 그 사건을 취재한 기자는 한 명일텐데. 그것은 당연히 우라까이 덕분이다. 한 정치부 기자가 경찰 인맥을 통해 유명 정치인의 대형 비리를 알게 되어 기사를 썼다고 하자. 당연히 그 정치인이 '내가 비리를 저질렀소' 하고 국회 정문 앞에 당당히 나설 일은 없으며 오히려 모든 연락을 차단해버릴 것이다. 기사 거리를 준 경찰이 누구인지 단시간에 알아낼 방법도 없다. 그럴 때 직접 취재해서 그 이슈에 대한 기사를 쓰겠다고 한다면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고 나서야 기사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럼 안쓰면 되잖아요?'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사건을 취재한 기자가 신문이 1만부도 안나가는 중소급 언론사의 기자고 아무도 그 기사를 우라까이하지 않는다면 그 일은 그냥 묻히게 될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알아서 확대재생산을 해주는 연예계 가십과는 다르게 정치계나 경제계의 이슈는 정말 묻혀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우라까이는 어느정도 언론의 목적과 합치되는 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이것이 흑화되서 출처를 제대로 표기하지도 않고 발제를 떼우거나 지면을 채우기 위해 습관적으로 우라까이를 한다거나 하는 식이 되기도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내 뇌피셜이 섞인 것인데, 내 생각에 우라까이는 언론의 기선제압에도 도움이 된다. 만약 한 명의 기자가 모 기업이나 모 인물에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면 고소로 위협하든 돈 봉투를 주든 -이런 일을 본적은 없지만- 그 일을 묻어버릴 시도를 해볼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기사가 스무개가 넘게 나와 있다면 그 기세에 눌릴 수 밖에 없다. 이는 거의 모든 기자가 때로는 우라까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상황과 맞물려 언론계에서 우라까이가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지 않나 싶다. 기자 개인으로서도 어차피 기사를 하나 더 쓴다고 성과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최초 취재를 했다면 추후에 기사가 몇 개 나오든지 간에 그 공은 자기가 갖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우라까이에 예민해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됐든 기자 생활을 하던 당시의 나는 우라까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건 원칙과 도덕 같은 것에 예민한 내 성향 탓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는 기자가 적성에 안맞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자가 도덕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좀 더 크게 보면 우라까이는 업계 관행으로서 이해할만한 일일 뿐 도덕과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베껴 쓰기가 당연한듯이 요구받았던 나에게는 도덕적인 문제로 다가왔을 뿐이다. 


두 번째는 인간관계다. 그 당시 불편했던 인간 관계가 몇 가지 있다. 우선은 처음 우라까이를 요구한 부장이었다. 나는 그에게 우라까이나 광고성 기사 같은 것들이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물어봤다. 하지만 그는 '조중동도 다 그렇게 해' 같은 내 기준에선 전혀 만족스럽지 않고 오히려 절망적인 대답을 할 뿐이었다. 나는 은근하게 그런 불만을 티냈고 나중엔 결국 이런 기사는 쓰기 싫다고 대놓고 말했다. 하지만 역시 원하던 대답 대신 '그냥 써'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기사 쓰는 우리는 뭐가 되냐?'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그의 태도가 좀 더 적대적인 된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회식 자리에서 취해서 욕을 하기도 했다. 아마 그의 입장에선 내가 혼자 께끗한 척 하는 놈, 잘난 척 하는 놈 정도로 생각됐던 것 같다. 아마 그는 '먹고 살려면 이정도는 타협해야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일의 공익성을 이해하던가 아니면 그만두던가 둘 중 하나를 고르고 싶었다. 애초에 다른 그와 나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었고. 당시의 나는 그것을 포용하고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해하고 그에 맞게 행동할만한 그릇이 안되었다. 싸우거나 참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줄만 알았을 뿐이다. 


그 외에도 인간관계나 연봉과 복지 같은 문제 그리고 내가 했던 몇몇 실수 등도 원인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들은 비교적 사소했거나 아니면 지금와서 돌아봐도 거기서 변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재취업을 생각하면서 이전 직장생활의 문제점을 조금 돌아봤다. 


생각해보면 직장생활을 포함한 대부분의 일은, 포용력이 있거나 자신감이 있으면 큰 문제 없이 잘 흘러가는 것 같다. 포용력과 자신감은 어느정도 비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절박함이 있는 사람이나 직장에서 잘맞는 관계를 찾은 사람들은 자신감이나 포용력 없이도 그럭저럭 잘 해나가는 것도 같다. 또 그런 절박함이나 안정적인 관계가 자신감과 포용력을 길러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절박함을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떤 사람을 만날지도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포용력을 기르고 자신감을 기를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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