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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르 Feb 07. 2019

오로라를 보면 천재를 낳는다(?)

캐나다 옐로나이프 여행기 <프롤로그>

옐로나이프의 오로라/사진제공=써니오로라 사장님

오로라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2014년 볼리비아 여행 때였다. 세계여행을 다니는 방랑객들이 톱10에 반드시 꼽는 ‘우유니 사막’의 황홀한 풍광을 보고 나니 오로라는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함이 들었다. 그때의 결심을 실천에 옮기는 데 무려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오로라 여행은 보통 겨울철인데 겨울 시즌에 여행을 다녀봐야 볼거리가 많지 않다. 굳이 오로라를 위해 몇 백만원을 들여가며 여행을 갈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오로라 여행이라는 미뤄놓은 숙제를 하게 된 건 작년 8월 쿠바여행 때문이다. 쿠바 여행 당시 그나마 가장 한국에서 가기 편한 경로인 인천-토론토-아바나를 택했고, 항공기는 에어캐나다였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다니며 만났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중에 가장 공손하고 신뢰감있는 사람들이 캐나다인이었기에 에어캐나다에 대한 호감도도 높았다. 그러나 이거 웬걸.. 에어캐나다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스칸디나비아항공(SAS)급 저질 서비스를 당연하다는 듯이 선보였다.


일단 인천에서 토론토까지 항공편이 1시간 가량 지연됐다. 사실 별 문제 없었다. 어차피 대기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니 덜 지루하고 좋지 뭐. 토론토는 게다가 환승전용 구간이 별도로 있어 중국 상하이 푸동공항처럼 환승하는데 2시간씩 써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미국처럼 환승객도 입국심사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 토론토 공항에서 국제선 환승구간을 지나 탑승구까지 왔다. 시간도 넉넉했다. 아무 근심,걱정,우려없이 항공기 탑승까지 라운지에서 흥청망청 술이나 마시고 놀다가 항공기에 탑승했다. 탑승까지 잘 했건만 이 놈의 비행기가 이륙을 안 한다. 기술적인 문제 어쩌구저쩌구하더니 1시간 넘게 대기한 뒤 쿠바로 향했다.


아바나 공항에는 당초 자정 무렵에 도착해야했건만 새벽 2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뭐 어차피 택시 탈거니까 하고 큰 걱정은 없었다. 아주 허술한 이민국 심사를 통과한 뒤 수하물 수취대로 향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이는데 10분 20분을 기다려도 우리 짐이 안 온다. 설마…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눈치 빠른 쿠바 아재가 이미 잃어버린 짐 신고하는 창구에 줄을 서 있다. 이거 완전 눈치 게임하는 거 아냐. 사람들이 하나둘씩 쿠바 아재 뒤에 줄을 섰고 과거의 경험에 미뤄봤을 때 이런건 줄 늦게 서면 엄청 기다려야 하므로 나도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줄을 섰다. 이미 앞에 7팀 정도가 서 있었다. 남미 속도로 한다면 최소 40~50분은 걸릴 것 같다.


보아하니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짐을 못 받은 것 같다. 그 와중에 한국서 온 여성 한 명이 커다란 트렁크를 회수하는 것 아닌가. 삼대가 덕을 쌓기라도 한 것인가 어찌 이런 행운을 누리게 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답, “이 트렁크는 제 친구껀데요. 제 친구는 어제 에어캐나다로 아바나왔어요. 그 친구 짐이 오늘 들어온거에요.”


잃어버린 짐 찾는 줄에서 나의 입은 에어캐나다 욕을 하고 나의 눈은 수하물 수취대를 원망스레 보고 있는데… 사무 창구에 직원이 없다. 줄만 서 다고 될 일인가. 그러던 찰나에 공항직원(에어캐나다 항공사 직원 아님, 항공사 직원은 대체 어디에?) 한 명이 창구로 오더니 우리가 서 있는 줄을 지나쳐 옆 창구에 들어가 앉는다. 이건 또 무슨 개똥 같은 상황. 뻔히 사람들 서 있는 줄 놔두고 아무도 없는 옆 창구에 앉으니.. 짐 찾아주는 서류 접수받는 것도 벼슬이었던가.

갑자기 줄이 와해된다. 눈치게임에서 1등했던 쿠바 아재는 역시 눈치가 빨라서 옆 창구로 가장 먼저 옮겨가 1등을 사수했다. 2등부터 순번이 뒤바뀌었다. 그 와중에 나는 6번으로 순번을 하나 끌어올리는 업적을 달성하기도.


수하물 수취대의 잃어버린 짐 접수하는 벼슬아치는 생각보다 사무 업무에 능숙했다. 애초 계산하기에 1팀당 10분씩 잡아 먹을 거라고 봤는데 그는 무려 6분 만에 한 팀씩 일을 끝내고 있었다. 기다리기도 지루하던 차에 에어캐나다 놈들 욕을 또 엄청했다.

“아니, 짐을 안 실었으면 사전에 통보라도 해야지. 그리고 1시간씩 공항에서 대기하던 중에 짐이라도 실을 것이지 1시간 연착하면서 도대체 뭘 한거야.”

우리 차례가 왔다. 벼슬아치가 우리 숙소를 묻고 짐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아바나에 이틀 머물 예정인데 이 짐이 과연 이틀 안에 아바나 우리가 묵는 까사에 정확히 올지 탁송시스템도 아주 의문투성이어서 공항에 짐을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접수 처리를 완벽히 하고 택시를 타고 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하루내내 옷도 없이 빈곤하게 다녔다. 뜨거운 아바나의 태양 때문에 단벌뿐인 옷은 땀에 잔뜩 쩔었지만 다음날 또 그 옷을 입어야 했다. 그나마 티셔츠는 레트로패션 물씬 풍기는 기념품을 하나 샀기에 교체가 가능했다. 속옷과 바지, 양말은 입고 또 입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뿐이겠는가 칫솔이 없어 양치질도 못 하고 잠옷이 없어 반나체로 자야했다. 이런 불편함 속에 하루를 보냈다.

쿠바 아바나

다음날 밤이었다. 전날 공항 벼슬아치한테 접수하고 난 뒤 받은 안내 전화로 짐 왔냐고 물어보니 아주 심플한 답을 한다. “모르겠다.” 그날 밤에 가봤자 왠지 허탕칠 것 같아서 다음날 아침에 가기로 했다. 이게 신의 한 수였다. 우리처럼 짐을 못 받았던 한국청년들이 굳이 짐을 찾겠다고 밤에 공항에 갔다가 에어캐나다가 또 연착돼서 짐 못 받고 돌아왔다는 슬픈 이야기를 후일담으로 전해줬다.


아침에 불안한 마음으로 공항에 가서 짐 찾으러 왔다고 하니 공항 옆 펜스 쳐진 곳으로 가라고 한다. 공항경비들이나 드나들 것 같은 곳이 아닌가. 우리가 터벅터벅 걸으며 근처로 가니 직원 하나가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달이 뜨듯 자연스러운 일처럼 우리의 있을 곳은 여기라는 듯 펜스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벼슬아치한테 받은 접수증을 주고 나니 기다리라고 한다. 하염없이 기다렸다. 전날 1번 번호표를 받았던 아저씨가 맞은 편에서 스페인어로 수다스럽게 떠들며 앉아 있다. 아저씨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만면에 웃음을 짓고 짐을 한 가득 들고 나온다.아저씨는 삼성 텔레비전을 비행기에 실었나보다. 세달만 버티면 블랙프라이데이인데 그걸 못 버티고.


차례 차례 지나 내 순서가 왔다. 공항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직원 출입구를 통해 수하물 수취대로 갔다. 여러 짐이 한군데 모여 있었는데 내 배낭이  켠에 놓여 있었다. 환한 웃음을 짓고 내 짐임을 확인시킨 뒤 공항직원의 에스코트를 받고 다시 직원 출입구로 나왔다. 그냥 가면 되는 줄 알았더니 웬걸 행정절차는 글로벌 넘버원이었다. 세관신고서 다시 꼼꼼히 쓰고 세관직원이 항목 다 확인하고 가방까지 보더니 통과시킨다. 예상치 못한 꼼꼼한 관리에 짐 도난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는 호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들도 하나씩 짐을 갖고 나온 뒤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트리니다드로 향할 수 있었다. 우리처럼 짐을 못 받았던 다른 한국 여행객들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본인 짐을 들고 나왔다.


여기서 쿠바여행 꿀팁) 에어캐나다 탑승시 기내 수하물에 반드시 잠옷, 세면도구, 여벌의 옷, 카메라, 양말, 속옷... 을 넣을 것. 흠 걍...위탁 수하물 부치지 마시라 -_-


오로라 여행 썰을 늘어놓는다더니 이건 쿠바 여행기인가. 순간 착각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을 듯 하다. 왜 먼 길을 이렇게 돌아왔는고 하니 이러한 큰 불편을 겪은 탓에 에어캐나다에서 나에게 무려 항공권 15% 할인 쿠폰을 이메일로 보내온 것이다. 에어캐나다는 형식적인 어투로 “아주 미안하게 됐다”며 3개월 이내 예약하면 에어캐나다 항공권의 15% 할인을 해주겠다고 설명했다. 아 그래도 항공기 지연에 대해 “쏘리” 한마디 안했던 SAS 항공보다는 한 수준 나은 것 같다.


처음엔 “이걸 어따 써”, “에어캐나다 따위를 또 탈 것 같냐”고 생각했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점차 에어캐나다에 대한 분노가 수그러들더니 11월의 어느날 에어캐나다를 통해 옐로나이프 구간 가격을 알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에어캐나다 홈피를 통해 15% 할인을 적용한 3개 구간(인천-밴쿠버-옐로나이프, 옐로나이프-밴쿠버, 밴쿠버-인천)이 대략 131만원 가량했다. 귀국편은 밴쿠버에서 스톱오버하기보다는 이틀 가량 풀로 쉬면서 밴쿠버 관광도 조금 하려고 3개 구간으로 나눠 끊게 됐다. 15%할인을 적용한 에어캐나다 홈피 가격은 항공권 가격비교 사이트의 최저가보다 8만원 가량 더 쌌다. 15%까지 저렴하진 않았지 조금 더 싼 가격이니…. 오로라 여행에 대한 가족의 동의를 얻고 결국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랬더니 카드사에서 “해외 원화결제 주의” 어쩌구 통보가 오는 것 아니겠는가. 아뿔싸. 이렇게 큰 금액은 원화결제시 7% 가량 추가요금이 발생할텐데 원화결제를 했던 것이다. 원화결제로 실제 수수료가 얼마나 더 들지 궁금해 에어캐나나 한국사무소에 전화를 숱하게 했지만 늘 한결같이 통화중이었다. 결국 취소고 에어캐나다 미국사이트에 들어가 결제를 다시 했다. 달러화를 네이버 환율 기준 원화로 환산하니 하루새 항공권 가격은 더 내렸다. 약 127만원 정도. 이번엔 달러로 결제했다. 그랬더니 카드사에 최종 청구된 금액은 133만원. 어쩌면 원화결제하는 게 더 쌌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에어캐나다의 고객불편 보상으로 받은 쿠폰 때문에 나의 오로라 여행은 시작됐다. 이거 근데 고객 보상 맞는거지…. 자꾸 생각할수록 그들의 프로모션에 당한 듯한 찝찝한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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