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옐로나이프 여행기 <프롤로그2+본편1>
프롤로그는 자고로 한 편에 끝내는 것이 여행기의 불문율이거늘. 잡다하게 늘어놓다보니 프롤로그2를 쓰고 있다. 항공권 결제를 마치니 중요한 것은 숙박이었다. 이게 가장 골치꺼리였다. 통상 여행일정 짜는 것은 날씨 영향을 감안하지 않고 전체 체류일정에서 꼭 가고 싶은 지역과 도시를 집어 넣고 이동일을 하루씩 잡는 심플한 형태로 하면 된다. (말이 쉽지ㅋ)
그러나 이것은 신의 가호가 있어야 허락된다는 오로라 여행이 아닌가. 캐나다 옐로나이프는 미국 NASA가 정한 확률갑의 선택받은 땅이다. 사흘 체류시 무려 95%의 사람들이 오로라를 보고 온다고 하는데… 그럼 사흘 넣고 나머지는 밴쿠버나 토론토를 넣을 것인가. 잠시 고민했지만 겨울에 캐나다 도시들 다녀봤자 큰 감흥 있을 건 아닐 듯 하고 오로라를 못 보게 될 불상사를 줄이기 위해 오로라 일정을 남들보다 많은 5일로 정했다. 그리고 남은 이틀은 밴쿠버에서 여유만만하게 다니는 걸로.
옐로나이프의 숙소를 찾다보니 한인 민박의 평이 나쁘지 않았다. 1박 가격은 에어비앤비의 가성비 좋은 집보다 2배 가량 하는데 사장님이 직접 오로라 투어를 운영하고 있어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썬샤인 비앤비라는 한인 민박집에서 ‘사흘 숙박 + 오로라헌팅 사흘 + 방한복 대여’를 최종 결정했다. 가격은 세금 포함 793달러였다. 그리고 남은 이틀은 에어비앤비로 옐로나이프 다운타운의 가성비 좋은 집으로 정했다. 이 집은 1박당 58000원 정도여서 쎤샤인비앤비의 절반 가격이었다.
밴쿠버 숙박은 호텔스닷컴을 통해 했다. 지난 여름 출장때 숙박을 잔뜩 적립해놓은 덕에 어느덧 1박 무료서비스 혜택이 가능했다. 1박 무료가 가능하고 도심 접근성이 좋은 곳을 찾다보니 헐리데이인 밴쿠버가 나왔고 평도 나쁘지 않아 선택했다. 1박 무료로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이 12만원 정도였는데 1박당 14만원 가량돼 2만원은 추가로 결제했다. 아침 식사는 불포함이었다.
항공과 숙박이 정해졌으니 사실상 여행준비는 끝. 내 여행은 대체적으로 이 정도까지만 사전에 정해놓고 구체적인 일정이나 계획은 여행 당일에 근접해서 거의 정하는 편이다. 실제로는 현장가서 즉흥적으로 정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겨울철 오로라 여행은 역대 최대급으로 준비할 게 많았다.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다보니 월동 물품을 잔뜩 구비해놓아야 했다.
10월만 되면 장롱속 내의를 꺼내 입는 보온내의 전문가님의 추천 상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하고(생일때마다 회사에서 주던 해피머니상품권이 잔뜩 쌓여 있었는데 네이버페이로 포인트 전환후 한번에 털어서 유용하게 썼다는) 털실 실내화, 안면마스크, 귀돌이(다이소에서 1,000원 주고 구매한 가성비 최고상품), 기모장갑을 남대문 시장을 돌며 장만했다. 핫팩도 옷에 붙이는 것, 양말에 붙이는 것, 대 사이즈, 소사이즈 등 온라인으로 60개 가량은 산 것 같다.
이제 끝났나 싶었는데 검색해보니 나만 월동준비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오로라 여행의 필수품인 카메라는 월동 준비품이 더 많았다. 배터리가 금세 닳는다고 예비 배터리 장만하고 카메라 방한방수커버를 구매했다. 혹독하게 추운지역에서 갑자기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면 카메라 렌즈나 바디에 이슬맺힘 같은 부작용이 나올 수 있대서 실리카겔도 구매했다. 월동준비에만 대략 20만원은 쓴 것 같다.
그래서 최종 나온 경비는 아래 표와 같다. 당초 옐로나이프 일정을 5일로 잡았는데 오로라 지수가 아주 높은 날이 6일째 나타나는 바람에 항공기 변경하고 옐로나이프서 급 1박을 추가하게 돼 추가 경비만 14만원 가량을 쓰게 됐다. 300만원 미만으로 막을 수 있었는데 결국 305만원 정도 총경비가 소요됐다. (토스로 환전한 금액 99만원 중 67만원은 3박4일 패키지로 썬샤인비앤비 사장님한테 현지서 납부한 탓에 여행경비로 쓸 토스 실환전액은 31만8000원 정도였다.)
사전 준비물을 아주 많이 준비했지만 결론적으로 팁을 전해주자면 옐로나이프도 사람 사는 곳이다. ㅋ 겨울 시즌에 간다고 그렇게 완전무장할 필요는 없었다. 또 카메라는 요새 성능 무지하게 좋다. 그렇게 호들갑떨면서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꿀팁) 유용한 물품: 귀돌이, 안면마스크, 장갑, 양말에 붙이는 핫팩, 일반 핫팩, 삼각대(없으면 비싼 돈 주고 대여해야 함)
불필요한 물품: 카메라 방한방수 커버(이걸 씌우면 당최 촬영할 때 조작이 안 된다. 사진을 매뉴얼 모드로 놓고 찍어야 해 ISO, 셔터스피드, F값을 자꾸 바꾸면서 최적의 상태를 찾아야 하는데 커버를 씌우면 불편해서 못 함), 담요(야간에 카메라나 내가 덮으려고 갖고 왔는데 완전 짐만 됐다), 보온물병(오로라 투어가면 커피나 코코아 다 줌)
있어도 되고 없어도 그만인 물품: 실리카겔(그다지 효과가 있지 않은 듯), 예비 배터리(오로라를 보는 시간이 짧아서인지 굳이 예비 배터리 효과를 못 본 것 같음)
환전은 요즘 여행 좀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데 모바일 환전이 제일 싸다. 미국 달러화가 아닌 이종화폐들은 우대환율이 낮은데 모바일 환전은 대략 50% 정도까지 해 준다. 요즘엔 환전시장에 뒤늦게 진입한 토스에서 첫 환전시 이종화폐도 70%까지 해줘 난 토스를 이용해 한화 100만원어치를 캐나다달러로 환전했다. 100만원 환전 기준, 우대환율 70%를 받으니 50% 받을 때 보다 약 1만4,000원 가량 더 쌌다.
이종화폐는 사실 현지 가서 카드사의 현금서비스를 이용해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국내에서 달러화-캐나다 달러화로 2번 환전돼 고객에게 환율이 좋지 않은데 카드사 현금서비스 쓰면 통상적으로 이보다 환율이 낮다. 다만 수수료가 든다. 수수료는 나라마다 너무 달라서 일괄적으로 말하긴 어려울 듯. 나는 귀찮아서 국내에서 캐나다 달러로 모두 환전해갔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에 대한 정보는 과거 내가 쓴 기사를 참고하시라.
https://blog.naver.com/kang14759/220921980514
드디어 D-데이. 캐리어 닫기도 벅찰 정도로 월동용품을 잔뜩 싣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요즘엔 인천공항서 PP카드로 MATINA나 스카이허브 라운지 이용하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해외여행의 꿀팁을 다들 잘 알고 있어서 라운지에 이용객이 수두룩하다. 대기는 필수일 정도로. 라운지에서 맥주랑 와인을 부어라 마셔라 하다보니 어느덧 탑승시각.
항공기는 무탈하게 밴쿠버에 도착했고 위탁 수하물 수취대에서 멍때리며 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웬 개 한마리가 나타나더니 바닥에 내려놓은 내 백팩에 코를 박고 킁킁 거린다. 개를 끌고 온 공항경비는 신이 나서 개한테 “냄새 더 맡아. 뭐 없니”라고 으쌰으쌰한다. 심드렁하게 개랑 경비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노라니 내 캐리어가 보인다. 캐리어를 들고 수하물 투입구에 다시 한번 보낸 뒤 옐로나이프행 항공기에 올랐다.
도착한 시간은 예정보다 30분 가량 지난 7시 20분이었다. 에어캐나다가 이 정도 했으면 아주 양호한 거다. 짐은 잘 왔으려나. 쿠바의 악몽을 잊었는지 내 백팩에는 카메라와 책 밖에 없었다.
위~잉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고 단체 관광객들이 연신 자신들의 짐을 챙겼다. 내 짐은 언제 나오나. 일말의 불안감이 들려는 찰나 하늘색 트렁크가 짜잔 나타났다.
블로거의 글을 보니 개별 여행객이라면 짐을 찾는 즉시 택시를 잡아 타라는 팁이 있었다. 인구 2만명이 거주하는 옐로나이프는 택시가 많지 않아 공항에서 어물쩡하면 다른 승객들이 이미 택시를 다 타고 가 한참 뒤에나 택시를 잡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공항 밖으로 나가니 택시가 여러 대 대기하고 있었고 한인민박 썬샤인비앤비의 주소를 보여주고 “렛츠고”를 외쳤다.
택시는 어둠속 눈길을 뚫고 15분간 달리더니 어두컴컴한 낯선 동네에 나를 내려줬다. 블로그에서 본 건물 외관이 맞긴 한데, 불안하게스리 택시기사가 “주소는 여기가 맞는데 주인이 없나, 왜 불이 꺼져있냐”고 말한다. 그걸 난들 알겠는가. 19불 몇 센트 나왔는데 걍 20불짜리 지폐줬더니 왜 팁 안 주냐고 따지진 않더라. 기사는 고맙다고 사라졌고 내가 현관 앞에 가니 짜잔 선샤인비앤비의 사장님이 문을 열어줬다.
집은 깨끗했고 쾌적했다. 사장님에게 캐나다구스 외투와 방한화 등 방한용품을 한가득 받았고(군대에서 보급품 지원받는 기분이었다) 이날 밤 첫 운을 테스트할 오로라 헌팅 준비를 시작했다. 기모내의를 입고 방한복을 입고 있자니 사장님이 거실로 와보라고 한다. 거실에는 3인의 여행객들이 모여 있었는데 사장님의 청천벽력 같은 말씀.
“지금 눈이 많이 오는데 이런 날은 가봤자 오로라 보긴 쉽지 않아요. 다들 동의하시면 오늘은 오로라 헌팅을 취소하고 내일 가는 걸로 하죠.”
아 역시… 첫날부터 일단 행운은 없었다. 나는 아직 4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으니 쿨하게 동의했다. 코리안 3인방은 표정이 아주 어두웠다. 그들은 어제 옐로나이프에 왔고 전날에도 날씨가 좋지 않아 오로라를 보지 못 했다고 했다. 벌써 이틀째 허탕 치는 것이다. 다들 3박 여정으로 온 탓에 내일까지 못 보면 오로라를 보지 못 하고 가는 NASA에서 정한 5%의 운 나쁜 사람들이 되는 셈이다. 나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탓에 9시에 침대로 뛰어들었고 코리안 3인방은 쓰린 속을 술로 달래기 위해 펍을 찾았던 걸로 훗날 확인됐다.
역시 오로라 님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