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정말 어려워
누군가 나에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대한 감상을 물었고, 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콜미바이유어네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끼는 감정을 누가, 어떻게 한정 짓고 규정해?" 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야.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스스로도 잘 모르겠는 다양한 형태로 내면에서 나타나고, 누구도 나와 완전히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에서 무언가 일어날 때, 잘 모르겠으면서도, 언어로 그것을 표현해.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내가 느끼던 어떤 것들이 선명하고 명확해지거든. 그리고 긍정적인 감정들을 선명하게 만들어서 키우는 일은 어쨌든 좋은 거니까.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나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것들, 두근거리는 느낌이 "그래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서", "그래서는 안 되는 관계라서" 혹은 "상대는 나와 같이 느끼지 않을까봐", 겁이 나서 꾹꾹 눌러버리면서 부정하기도 해.
엘리오와 올리버도 영화 초반에는 그런 모습을 보여. 분명히 내면에서 열정적으로 끓어오르는 것들을 느끼는데 "그래서는 안 되는 관계라서" 언어로 선명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부정해.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둘은 서로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않아. 왜냐하면 사랑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요동 중에 하나를 언어로 표현한 감정일 뿐인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사랑이 무언가 대단한 것인냥 "사랑은 이런거야"라고 규정하러 들고 그 대상을 이성으로 한정 지으니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생애를 이성애와 다른 특수한 범주로 분류하니까.)
대신 "서로가 서로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것"으로 서로가 어떤 순수하고 열정적인 내면의 요동을 같이 느끼고 있음을 표현하고 공유해. 그래서 이 둘은 사랑이 필요없고, 사랑하는지도 중요하지 않아.
1981년 여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하던 그 순간에, 주체할 수 없는 두근거림을 따라 순수하고 솔직하게 표현했고 열정적으로 서로의 이름을 불렀을 뿐이야. 북부 이탈리아의 따뜻한 해와 언제라도 빠질 수 있는 물이 흐르는 작은 도시, 둘 만의 비밀이 허용되는 이상적인 공간이라서 가능했을 거야.
영화를 보는 동안 개인적으로 느낀 건 나도 전에는 내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참 잘 됐던 것 같은데, 커가면서 점점 생각하고 지켜야할 게 많아질수록 나의 내면의 변화들을 그대로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포장하고 가공하게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어.
어렸을 때처럼, 엘리오처럼 내면의 요동에 순수하게 나를 그대로 맡길 수 있을까? 두근거리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에 다시 그만큼 솔직하고 열정적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맴돌았어.
나는 아무리 고민해봐도 여전히 사람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은 어렵고, 쉽고, 복잡하고, 단순하고, 명확하고, 애매하고, 진실 되고, 거짓이 섞여 있고, 상대방이 나를, 내가 상대방을, 내가 나를 속이기도 하고, 무겁고, 가볍고, 진중하고, 장난스럽고, 추하고, 아름답다.
"당신은 지금 이런 감정이에요!" " 저 사람의 지금 감정은 이거에요!" 라고 명확하고 투명하게 규정해주면 좋겠으면서도, 그러면 너무 재미와 낭만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하. 감정은 정말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