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나는 파리 올림픽의 언어와 기호
파리 올림픽 경기를 열심히 지켜보면서 몇가지 기억나는 장면을 8월이 지나기 전에 복기해둔다. '개강 특집' 포스팅!
1. 탁구 신유빈 선수의 인터뷰: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후에 상대방이 “나보다 더 오랜 기간, 묵묵하게 노력했던 선수"이며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고 더 배우고 다시 묵묵하게 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용으로나 형식성으로나 미디어 앞에 선 20살 청년의 말이 너무 성숙하고 치밀했다. 작정하고 외운 말로 보이지 않았다.
2. 신유빈 선수가 개별적인 화자로 그만한 말을 전한 대단한 주체로 보이는 것보다 그녀가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말을 주고받았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질서와 관계로부터 그런 말을 하는 신유빈 선수의 에토스가 구성된 것으로 보인 것이라면.. 그런게 언어감수성 교육자가 기대하는 언어/정체성/교육의 지향점이 아닐까 싶다. 언어교육은 언어만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교육만의 문제도 아닌 것이다.
3. 유도 조미미 선수의 말투: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와 성장하면서 한국어는 제2언어였고, 온전하지 못했지만 조미미 선수의 한국어 말투가 귀여웠다. 근데 그녀만 그런거 아니다. 중간언어, 이중언어, 접촉언어는 놀림과 경계의 대상이곤 하지만 음습한 마음을 버리고 들어보면 한결같이 매력적이고 재밌고 예쁘다. 조미미 선수의 웃는 인상이 좋다는 분이 많았는데 그건 약간 마음이 좀 짠하기도 했다. 복잡한 언어정체성으로 여러 곳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친, 언어적 타자들의 미소는 우리가 아는 미소와 기능이 다를 때가 많다.
4. 은퇴를 앞둔 나달: 조코비치와 2회전에서 만났고 클레이 코트였지만 무력하게 1세트를 내주었다. 그런데 2세트 중반에 불꽃같은 스트록이 나오고 전성기 때 보여준 집념 넘치는 동작과 눈빛이 화면 가득 클로저업 되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는데.. 결국엔 더 버티진 못하고 한 세트도 따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리막 인생이라고 한번에 넘어지고 뒹구는 것 아니다. 내리막에선 옆발로 흙을 질질 끌면서 그렇게 미끄러지 않겠다고 버틸 만큼 버티는 거다. 나달은 패배했지만 (모두의 인생에서 감수해야 하는 예정된 패배였지만) 멋지게 패배했다.
5. 역도 김수현 선수: 아쉽게 실격 처리가 되면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렇지만 역기를 머리 위로 훌쩍 쳐들고선.. 아슬아슬하게 몸이 흔들리는데.. 악착같이 부동자세를 유지하면서 흔들리는 얼굴 가득 "엄마~"라고 간절하게 외치는 장면이 있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단번에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성공이든 실패든, 자신을 돕거나 키우거나 가르쳐준 어른과 부둥켜 울다가 그러다가 픽 웃는, 그렇게 웃다가 다시 우는 청년 선수들의 모습이 눈부시게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6. (개강임을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듯.. 수업 준비 안하고 방학의 기억으로 살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