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대화교육이 시작된다
냉동된 가공식품을 이용하면 신속하게 먹을 수 있지만 건강에 좋지 않다. 효율적으로 먹으려고 애쓸수록 오감으로 맛을 즐기는 만족감은 사라진다. 과식하거나 혼자서 식사하는 습관이 생길 수도 있다. 식사만을 위한 ‘효율적인 식사’의 문제점이다.
먹는 것은 단지 생존을 위한 행위만이 아니다. 프랑스인의 ‘대화를 위한 식사’는 한가롭고도 낭비적인 문화로 보일 수 있지만, 2010년 유네스코는 ‘프랑스의 미식 Le repas gastronomique des Français’ 문화를 인류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레시피를 점검하고, 시장에서 제철 식재료를 구매하고, 와인을 고르며, 식탁을 꾸미고, 맛을 평가하면서 여유롭게 (두어 시간이 넘도록)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미식을 행하는 의례가 문화유산으로까지 선정된 것이다.
분주하면서도 효율성을 지향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면 식탁에 긴 시간을 투입하는 미식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맥도날드화된 삶의 양식에 우리 모두 전념한다면 프랑스식 미식 사랑은 보존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맥도날드와 같은 곳에서 햄버거만 먹고 살 수 있을까? 효율적으로만 소비되는 식사문화에서는 먹고 마시며 오감으로 만끽할 수 있는 포만감이나 유대감이 소멸할 수밖에 없다.
언어와 교육도 이제 ‘효율성’보다 ‘지속가능성’이나 ‘적정성’이 중요한 가치로 논의되어야 한다. 국제기구나 비영리단체는 ‘지속가능한 발전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위한 실행안에 언어 관련 항목도 반영시키고 있다. ‘적정기술 Appropriate Technology’에 관한 문헌이 참조되면서 ‘적정언어교육 Appropriate Language Pedagogy’에 관한 개념과 사례도 이미 등장했다.
지속가능성과 적정성은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과 계층을 배려하기 위한 언어계획으로 기획되는 편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경제 부국, 디지털 강국, 사교육까지 넘치는 곳에서 ‘지속가능한 수준의 적정언어교육’을 해보자는 제안은 어색하게만 들린다. 그렇지만 초·중등 교육현장만 보더라도 지속할 수 없는, 또는 적정 수준을 벗어난 사교육비 부담은 다수 가정에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선행학습과 시험준비에 과도한 지출이 보고되는 한편 OECD가 주도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 PISA에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한국인 학생이 급증했다.
학업 부진은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무관하게 나타나고 있기에 교육 분야의 지속가능성과 적정성은 미개발국만의 고민이 될 수 없다. 대화교육을 위해서 어학연수도 보내고, 영어마을도 만들고, 대화 로봇까지 개발하고, 화려한 멀티미디어 교재를 번갈아 사용한다. 그렇지만 사방에서 기초학력도 감당하지 못하는 ‘학습부진학생’, ‘영포자(영어 포기자)’ 등이 넘친다. 상위권과 하위권 학생의 교육격차가 계속 벌어지면서 양극화는 학교 안팎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 관계를 만든다.
대화교육도 동일한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다수 학생이 대화할 기회와 권리를 만끽하지 못하고 표준화된 시험만 준비한다. 대부분 영어학습자는 중급 수준의 언어사용자도 되지 못하고 청년이 되기 전에 일찌감치 영어학습을 중단한다. 효율적인 프로그램으로 대화를 늘 공부했지만 결국 ‘대포자(대화 포기자)’가 된다. 대화로 의미를 협상하기도 싫고 차라리 입을 닫거나 혼자서 시험공부만 한다.
학교를 떠나 회사에 다닐 때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서비스업종에 취업하면 거기서 대화의 형식이나 내용이 통제되는 성문화된 지침을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유명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직원이 고객과 나누는 대화는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웃음, 간단한 유머, 눈 맞추기, 고객의 이름 사용, 인사를 시작하고 종료하는 순서 등은 사전에 학습되어야 한다.
같은 회사에서 동일한 업무를 맡더라도 서로의 말은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 대화법은 천편일률적이다. 업무 대화는 고객으로부터도 평가를 받고 내부 관리자에 의해서도 수시로 점검되고 통제된다. 규범을 벗어난 대화가 발견된다면 지적과 수정이 뒤따른다.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대화의 자율성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학교나 직장에서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에 대한 규제가 지나칠 때가 있었지만 요즘은 어디서나 개성이나 활동 편의성을 고려하여 복장과 외모에 자율적 조치가 허락되는 편이다. 대화도 동일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대화(교육)는 통제되고 관리될 수만 없다. 적정 수준만 지킨다면 다양성과 자율성의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
유치원의 아이도, 신입사원도, 이주민도 안전한 관계와 익숙한 맥락만 허락된다면 누구나 대화를 배울 수 있고 어디서든 감당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풍성해지려면 대화가 대화답게 달라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하고 적정한 수준의 대화부터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우리 사회가 차이와 다양성의 가치를 수용하려면 (효율성의 언어교육을 경계하면서) 대화교육부터 지속가능성과 적정성 가치로 재편해야 한다.
AI가 생성하는 대화는 지루하거나 지속가능할 수 없다. AI에게는 그만한 수준의 대화 업무만 맡기면 된다. 그리고 인간 화자끼리는 AI가 감당할 수 없는 평생 지속할 수 있으면서, 누구나 적정 수준으로 공유될 수 있는 대화가 넘쳐야만 한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