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자원, 다중언어
우리는 지금 어떤 언어사회에 살고 있는가? 사회적 다수가 ‘모어이면서도 공식어인 한국어’를 지배적으로 사용하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단일한 언어사회라고 단정하긴 망설여진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하고 OECD 기준으로도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이주라는 사회적 현상을 고려하면 외국인의 국내 유입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심지어 내국인의 제2언어 사용 경험까지 고려하면 더 이상 우리나라를 한국어만 사용하는 모노링구얼 사회로 보긴 힘들다.
부산광역시는 2022년에 ‘글로벌 영어 상용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전략을 발표하고, 관련 부처와 업무 협약을 시작했다. 도시 표지판이나 공문서에 영어 정보를 늘리거나 병기하고, 영어를 능통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무원을 선발하며, 외국인 학교나 글로벌 빌리지를 세우기로 계획했다.
인천광역시의 송도국제도시 역시 체류하는 외국인 비율이 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영어 통용도시’로 조성하겠다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계획은 2023년에 공지되었다. 영어를 상용어나 공용어로 사용하자는 사회적 논의는 수십 년 동안 중단된 적이 없었지만, 관광특구, 무역특구, 글로벌 캠퍼스, 글로벌 기업 수준이 아니라 부산이나 송도 규모의 큰 도시에서 기획되고 있다는 점이 색다르다.
앞으로 사회를 주도하는 권력 집단이 누가 되든 다중언어 사회를 유도하는 공간성이 다채롭게 기획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유와 다양성, 자본과 자원의 가치를 붙들고 있는 편에서는 다중언어 경관을 허락하면서 다양한 영어가 통용될 수 있는 시장을 키울 것이다. 그것을 경영 전략이나 정치적 기획일 뿐이라며 냉담하게 비판할 수만 없다.
언어를 고정성, 동질성, 단일성의 본질로 묶어두지 않을 것이라면 한국어가 아닌 또 다른 언어 역시 국내 사회에서 자원재나 공공재로 얼마든지 논의될 수 있다. 사회적 다수의 동의만 있다면 전대미문의 ‘탈단일언어 사회’의 질서가 제도적으로 구축될 수도 있다.
그런 중에도 우리는 단일하고 공식적인 언어, 표준적인 언어 형태, 원어민과의 대화에만 집착하면서 우리 눈앞에 잔칫상처럼 펼쳐진 다중언어 자원을 포용하거나 만끽하지 못하고 있다. 모노링구얼이라는 훈령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맥도날드화된 대화에만 집착한다. 심지어 팬데믹까지 겪으며 고립과 고통을 경험한 우리는 대면 소통이 복원되었음에도 말 차례가 엄밀하게 정해진 사각형 화면의 줌(zoom) 대화를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피식쇼’ 콘텐츠를 보면 힘을 빼고 서로를 배려할 때 누구나 다중언어 기반의 대화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 명의 개그맨이 초대 손님과 함께 링구아 프랑카로서의 영어를 사용하고, 트랜스링구얼 대화의 모양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진행자 이용주는 3년 반 동안 호주에서 체류한 경험도 있고, 김민수는 영어와 한국어를 그럴 듯하게 절반씩 사용하며, 정재형만 한국어를 주로 사용한다. 영어 토크쇼를 한다지만 모두 온전하게 (표준)영어만의 대화를 감당할 수 없으니, 그들은 협력하면서 서로의 말에 반응하고, 창조적으로 개입하고, 동작과 표정으로 소통하고, 맞장구나 비언어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엉터리 영어, 혹은 막무가내 대화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콘텐츠는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예능 작품상을 수상했다. BTS나 할리우드 영화감독과 배우까지 초대 손님으로 나오며, 수백만 명이 구독하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링구아 프랑카로서의 영어, 트랜스링구얼만의 대화법을 섣불리 폄훼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그토록 협상적이고도 유희적으로 다중언어 대화에 만끽했던 적이 있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영어로 소통하지만 한국어라는 언어자원을 차단하지 않는, 한국어를 지배적으로 사용하더라도 영어를 사용하는 화자를 배려하는, 말끔한(문법적인) 문장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더라도 기호적이고 공간적인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화 주체였던가?
〈피식대학〉의 장면처럼 다중언어자원을 유쾌하게 동원하며 대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낯선 언어적 타자에 대해 개방적 태도(serendipity)를 갖는 것이고, 아울러 이질적인 규범체계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협력적인 태도(synergy)를 배운 것이다. 그런 개방과 협력의 태도는 다중언어 사회의 코스모폴리탄 화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하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