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가르치는 '스승'으로 살지 않기
1. 학부나 대학원생을 '애들'처럼, 좋은 말로 하자면 후배나 친구처럼 대하던 젊은 교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마치 무슨 대단한 멘토인 것처럼 그들을 데리고 다니던 때였다. 강의를 마치고 함께 밥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원어수업이라면 ‘Korean Day’를 정해서 야외수업 명목으로 밖에 나가서 한국말로 수업하고 격식 없이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2. 그때는 지금처럼 엄격하게 시험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중간평가를 보지 않아도 되었고, 기말에 제출하는 페이퍼 하나만으로 학점을 줄 수도 있었다. 나는 시험지 지면에 문항을 제시하고 제한된 시간 동안 학생들이 답을 쓰는 평가방식이 싫었다. 중간평가 성적으로 일찌감치 학업성취도를 구분하는 것도 싫었다.
3. 그래서 학기가 끝나갈 즈음까지 평가를 유보하고, 함께 계속 공부를 했다. 잘하는 학생들이 늘 있었고 친한 학생들도 생겼다. 학점도 잘 줬다. 그런 덕분인지 학생들은 대학원에도 많이 진학했고 유학도 갔다. 그런 것이 내 자랑이기도 했다.
4. 그런데 학교가 상대평가 시스템으로 교칙을 바꿨고, 다양한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학교 안팎으로 여러 변화가 넘쳤고 그러면서 가르치고 평가하는 절차와 내용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5. 이젠 중간평가도 반드시 보고, 기말 페이퍼도 최종본을 받기 전에 아웃라인이나 드래프트를 먼저 받고 나름의 지침과 의견을 제시해준다. 부정행위를 예방하자며 시험지 복사도 내가 하고, 시험감독도 직접 한다.
6. 평가는 엄정해졌다. 예전엔 A와 B 학점의 구분이 명시적이지도 않았고 다분히 직관적인 평가도 많았던 것 같다. 강의노트까지 만들고 그걸 학생들과 공유했다. 성적의 근거를 제시하고 그것 역시 학생들과 공유하고 토론한다.
7. 내게 '애들'은 사라젔다. 그런 만큼 나는 지금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이 예전보다 훨씬 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적 관계성도 사라졌다. 내가 꼰대 교수가 될 경로가 사라진 만큼 학생들도 내게 이제 “얘들”이 아니었다. 교수랍시고 가부장적 권력을 발휘할 기회는 사라졌지만 다수 학생들에게 그건 좋은 일이었다.
8. 온정적이고 직관적인 관계성이 선호되거나, 다분히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으로 교수-학생 관계성이 조직되기보다는 문서에서 약속된 지침대로 서로의 의무와 권리가 지켜지지 원한다. 서로의 사적 영역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 인격권, 명예, 혹은 자아정체성이 존중된다.
9. 문제가 생기면 교수도 학생도 자신을 보호할 기관(예: 인권센터)이 생겼다. 성추행을 교수로부터 당한다면 학생은 교수와 만날 필요가 없다. 신고할 수 있다. 교수의 인격과 교육권을 훼손하고 모욕하는 학생이 있다면 교수는 위협받는 느낌을 감수하고 학생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 역시 신고할 수 있다. 새로운 학교질서로부터 우리는 각자의 위치성을 보다 인격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인 말과 글로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10. 우리가 새로운 텍스트를 끼워 넣지 못하면, 그럴 수 있는 관행적 질서를 허락하지 않으면, 당연한 장르와 스타일의 담론질서에서 익숙한 서로의 위치성은 좀처럼 바뀌지 못한다. 우리가 모두 “얘들”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면 그만큼 독립적으로 상호텍스트적 절차와 형식체계에 개입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11. 텍스트를 배치하면서 의견을 내고, 특정 장르에서 주장을 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비판도 해야 한다. 계약서를 읽고, 수업요목에 관한 설명을 듣고, 예의를 지키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상황을 조정해야 할 때는 그걸 요청하는 언어사용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12.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가부장적 담론질서를 민감하게 포착하기 원한다. 매니저가 직원을 “얘들”로 부르는 곳에서 일하지 않기 원한다. 나는 그들이 “얘들”보다는 성인으로 존중되며 호명되는 곳에서 일하기 원한다.
13. 매니저가 가부장으로 더 챙겨주면서 얘들로 다루는 곳보다는, 덜 챙겨주더라도 어른으로 공식적인 관계성을 만들고 독립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바람직하다. 직원으로 일할 때 계약서 내용을 잘 읽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하는 곳이다. 온정적인 가부장이 없다면 책임감이 더 생긴다. 물론 처음엔 경직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계약서의 내용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파면될 수도 있는데 온정적인 매니저님이 없으면 뭘 부탁할 수도 없을 것 같다.
14.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이라도 우린 텍스트를 더 읽고, 더 듣고, 더 말하고, 더 쓰면서, 의미를 타협하는 주체로 성장해야 한다. 그런 관계성과 정체성이 쌓이면, (상호)텍스트성에 더 감수성을 키우면, 기득권력이 늘 관리하는 장르와 스타일이 소멸될 수도 있다. 국내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주의는 바꾸지 못해도 내가 일하는 곳에서 가부장적인 장르와 스타일 속성이 변할 수 있다. 잘 안 바뀌어도 새로운 사회적 조건과 만나면 분명 바뀔 수 있다.
15. '애들' 가르치는 스승다움의 텍스트가 (여전히) 넘치던 5월 15일, 몇년 전에 발간한 <<담론의 이해: 담화, 담론적 전환, 비판적 담론연구> 274-277쪽 내용이 생각나서 여기서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