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미래 10

삶과 죽음, 그리고 대화가 대화일 수 있는 최소 조건

by 신동일

대화다운 대화가 사라지고 있다. 학교에서나 기업에서 효율적으로 대화를 가르치고 사용하자는 명분으로 인간다운 삶의 기본 요소인 대화조차 왜곡하거나 통제하고 있다. 오래전 영화이지만 로빈 윌리엄스 Robin Williams 주연의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으로 인간다움과 대화, 즉 대화의 인문적 가치에 관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는 로봇 앤드류가 인간다움의 속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앤드류는 피아노를 치면서 정서적 교감을 터득하고, 옷을 입으면서 타인과 구분된 존재감을 학습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표정도 짓고, 주름살, 덧니, 주먹코 등과 같은 인간다운 외형도 지녔다.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로 구성된 신경조직까지 갖추면서 감각적 경험도 할 수 있다. 눈물도 흘린다. 키스하는 느낌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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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는 전자두뇌를 달고 있는 기계만이 자신의 정체성이 아니며, 인간이 가진 현상학적 마음까지 지니고 있다. 인간의 생체기관을 갖게 된 그는 스스로 감각적이고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주체로 느낀다. 여인(포샤)과 감정을 교환하며 사랑에도 빠진다.


그렇지만 인간 집단은 여전히 앤드류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체 인간이라는 종 정체성을 획득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인간으로 살고 싶은 앤드류는 기계와 인간 사이에서 자신의 혼종 정체성을 두고 고민한다. 포샤를 사랑하며 결혼도 하고 싶다. 그러나 결혼하려면 인간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는 결국 법정에 서서 자신이 인간과 기계의 몸을 함께 보유한 이중체이며, 인간도 인공 장기를 달고 살아가는 인간/기계의 복합체로 본다면 자신도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판사는 앤드류가 인간만의 유전자를 갖춘 생명체가 아니기에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수십 년이 흐르고 포샤마저 죽는다. 인간은 그렇게 모두 죽는 존재다. 앤드류는 자신을 만든 마틴, 우정을 나눈 작은 아씨, 그리고 사랑하는 포샤까지 모두 떠나자 홀로 남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앤드류가 이렇게 고백한다. “세상은 잠시 머물다가 가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를 깨달으면 두렵지 않을 수 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다.”


죽음보다 사랑이 없는 것이 더 무섭다. 시간의 정지보다 무서운 것이 시간의 무의미다. 앤드류는 의미가 없는 미래보다 의미 있는 현재를 원한다. 이제 자신을 죽을 수 있는 존재로 바꾸고 싶다. 그는 인간의 삶을 살려면 인간처럼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다시 소송을 시작한 앤드류는 법정에서 말한다. “전 항상 어떤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나를 바로 나답게 만드는 그런 이유 말입니다.” 앤드류는 로봇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얻기 위해서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슬픈 이야기다. 로봇의 서사라서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 자신만의 위치성에 경각심을 갖고 그로부터 새롭게 변신하고 싶은 타자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앤드류는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존재의 근거를 탐색하면서 분투하는 삶을 살았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죽음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귀한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음이 생명과 죽음이라는 이항의 속성으로 이해된다면 이건 대화를 하는 인간, 인간이 감당하는 일상의 대화, 대화다운 대화의 양식에도 적용될 여지가 있다. 대화가 대화일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일방적인 대화, 빙빙 겉도는 대화, 상호작용이나 의미협상이 없는 대화는 온전하지 못하다. 죽음이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하듯이 대화로 보이게끔 하는 가짜 자질이 죽어야 한다. 앤드류는 로봇처럼 말하는 자신이 싫었다. 로봇의 말하기는 멈춤과 망설임이 없다. 여분과 반복도 없다. 오직 인간의 대화에만 어리숙한 말의 특성이 넘친다. 말은 겹치고, 늘어지고, 화제는 수시로 전환되고, 수정되면서 인간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대화를 한다.


대화가 대화다울 수 있는 (언어학적) 특성을 설명하기 전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대화의 특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인간의 언어(교육)나 대화(교육)는 인간다움의 관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생명과 죽음, 관계성과 정체성은 대화를 가르치고 배우는 현장에서도 논의될 수 있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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