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미래 11

LG전자의 영어공용화를 다시 기획한다면

by 신동일

글로벌 기업인 LG전자는 2008년에 영어공용화를 선언했다. LG전자 수준의 기업이 영어공용화를 시도한 것은 ‘한국에서 한국인의 한국어만의 단일언어사회’의 신화를 흔들 만한 사건이었다.


학교 단위도 아니고 대기업에서, 상용어도 아니고 공식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상황이라면 ‘유연하면서도 협력적인 대화’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LG전자의 영어공용화 현장에서도 맥도날드화된 대화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세계화 담론이 형성되면서 국내 기업도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원을 선발하거나 영어를 사용하고 가르치는 사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당시에 두산그룹은 오후 5∼7시에 영어만 사용하는 ‘English Only Hours’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모든 직원이 영어를 공용어처럼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한국어를 사용하면 벌금까지 내게 했다.


그러던 중에 LG전자가 2008년에 글로벌 기업의 변화·관리 전략으로 ‘한글이 사라진’ 영어공용화 계획을 전격적으로 실행한 것이다. LG전자에서 영어공용화 계획이 공식적으로 논의된 시점은 2002년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던 LG전자는 해외 현지 법인과 본사 사이의 의사소통을 개선하기 위해 영어를 공용어로 도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업 간의 경쟁이 심화하는 와중에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현지화 역량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한국어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서든 영어로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직원들이 필요했다.


대화의 미래 11 이미지.png


3단계로 구성된 영어공용화 시행안이 2002년에 서둘러 수립되었다. 1단계에서는 우수 사례를 영문으로 문서화하고, 본부장 주관 회의 등을 영어로 진행하거나, 해외 법인과 관련된 품의서를 영어로 처리하면서 영어공용화를 시행한다.


2단계에서는 해외법인과의 메일 수·발신을 영어로 수행하고, 사업부장 주관 회의도 영어로 하면서 영어공용화의 범위를 확대한다. 3단계로는 사내·해외 법인의 모든 품의서를 영어로 작성하고 게시판 문서를 작성할 때 한글과 영어를 혼용한다. 다급하게 만든 시행안이지만 부분적 적용이나 한글과 영어 혼용을 고려한 나름대로 유연한 언어계획안이었다.


2004년 김쌍수 부회장이 CEO로 취임하면서 영어공용화 계획은 본격적으로 실행되었다. 그는 ‘글로벌 기업에 맞게 2008년까지 영어를 공용어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경영 목표를 제시했고 영어공용화를 기업 전체에 적용한다고 공표했다. 영어공용화를 실현하기 위한 목표로 ‘글로벌한 업무를 수행할 때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며, 한국 내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유연한 전략도 언급했다. 한국어와 영어의 공존, 혹은 복수의 언어를 횡단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실제적 상황을 고려했다.


그렇지만 영어공용화가 다양한 현장에서 실행되면서부터 효율성의 원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전체 구성원 대상으로 영어(말하기)능력을 측정하고 기록하고 관리했다. 직군에 따라 직원의 토익 점수를 수집하고, 평균 점수를 산정한 다음에 상향 조정된 목표 점수를 제시했다.


토익 점수가 높지만, 영어로 소통할 수 없는 직원이 많다고 지적되자 YBM 시사에서 개발한 SEPT 영어말하기능력시험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10등급으로 구분되는 SEPT에서 2008년 기준으로 기업의 일반 구성원은 5등급, 마케팅 업무처럼 영어로 대화를 자주 하는 구성원은 7등급을 취득하도록 지시했다.


LG전자는 직원들 모두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돕겠다는 취지로 교육과 평가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모든 직원은 사내에서 제공하는 어학교육에 참여해 SEPT 시험을 준비하고 응시해야만 했다. 출석률과 최종 성적은 엄격하게 관리되었다. 3개월 동안 출석률이 낮은 교육생에게 5~15만 원까지, 그리고 1개월 집중교육 과정에서 성적이 향상되지 않은 교육생에게 30~50만 원까지 벌금을 내게 했다.


물론 시험 성적이 좋은 직원에게는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영어센터(ECC, English Communication Center)’ 조직도 신설되었고 본사와 해외 111개 법인 및 지사가 사용하는 ‘LG 표준영어’가 제시되었고 인트라넷 환경에서 영어로만 소통하게끔 유도되었다.


LG전자는 ‘한국어가 아닌’ 혹은 ‘한국어 대신 사용하는 영어’를 사용하는 공용화 지침을 강조한 셈이다. 그리고 영어능력이나 대화능력은 수량화된 시험 점수로 관리했다. 그러나 토익이든 SEPT 말하기시험이든 맥커뮤니케이션 양식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결국 2010년에 LG전자의 영어공용화는 기업 전체 규모에서 철회되었다.


영어공용화가 기획될 때만 해도 역동적이고도 협상적인 대화가 기업 현장에서 들릴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어공용화 집행 과정 내내 표준적이고 단일한 영어, 효율적인 영어시험의 운용, 상벌제도를 기반으로 한 통제적인 지침만이 강조되었다. 업무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대화능력, 협력적인 의사소통능력이겠지만 맥커뮤니케이션 교육과 상벌제도로 관리되는 통제적 시스템으로는 도출되지 못했다.


당시 영어를 공용어로 실행한 다른 기업과 학교 공간을 분석해 보면 단 하나의 목표언어, 표준적인 언어능력,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시험제도에 관한 당위가 넘친다. 그마저도 성급하게 상명하달로 지시된다. 한국어만을 지배적이면서도 단일하게 사용했던 공간에서 일상적인 (영어)대화부터라도 자연스럽고도 유연하게 사용했어야 할 텐데 그와 같은 시도는 없었다. 아쉽게도 맥도날드화된 대화만 넘쳤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01

작가의 이전글대화의 미래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