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미래 12

합리성의 환상, 중독자의 심리

by 신동일

대화도 효율적으로 하라고 한다. 초등학생에게든 직장인에게든 대화를 합리성의 도구로 가르친다. 대화를 가르치고 배우고 평가하는 활동을 두고 효율성의 원리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면 그건 중독 상태나 다름없다. 대화, 대화하는 관계, 대화하는 상황과 목적에 관해 합리성의 환상을 품는 중독자의 심리다.


중독은 술이나 마약처럼 독성 물질에 의한 신체적 중독도 있지만 비물질 관련 장애도 포함된다. 즉 무언가에 정신적으로나 행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도 중독이다. 영어 단어 ‘addiction’은 라틴어 어원 ‘addicene’에서 온 어휘이며 양도하거나 굴복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잘 알려진 것처럼 중독자는 뇌의 보상체계가 강제로 작동하며 뇌 활동은 손상된 상태다. 자기통제에 실패하고, 중독된 대상에 계속적으로 의존하면서 신체나 정신의 기능이 마비되는 순서를 밟는다. 중독자는 우연이나 재미로 무언가를 탐닉한 것일 수 있지만 자신의 현실 세계를 벗어나려는 욕망이 작동한 것이기도 하다.


대화의 미래 12 이미지.png


외국어로 대화를 공부하거나, 자신의 모어로 대화를 할 때 어떤 규범이 지나치게 의식되는가? 어리숙하거나 산만한 대화가 나오면 불편하고 어색한가? 대화를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면 창피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그건 이상한 심리 상태 아닌가? 대화는 간단한 어휘와 문법만 알아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구술활동이다. 서사, 논증, 발표, 토론과 다르다. 서로 협력하며 나누는 대화에서 그토록 불편하고 창피하고 무력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대화를 즐겁게 잘하고 싶은데 (심지어 성실하게 대화에 관한 공부도 했지만) 자신이 하는 대화는 늘 문제투성이로 느껴진다면, 자기가 뱉은 말이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대화라는 실체를 직면하고도 인정하지 않는 중독의 심리 상태다. 원어민의 간결하면서도 완벽한 대화를 모범처럼 붙들고 그걸 지나치게 의존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당연히 불필요한 불안과 고통이 생긴다.


성경 〈잠언〉 23장에 보면 술로 인해 중독된 삶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중독자에겐 당연한 모습이다. 술에 중독이 되면 ‘괴이한 것’과 ‘구부러진 말’에 대해 민감성이 사라진다. 때려도 아프지 않고 상하게 되어도 감각이 없다. 다시 술을 찾을 뿐이다.


우리 중 다수가 삶의 현장에서 그만한 수준의 중독 상태에 빠져 있다. 얼어붙은 대화도 마찬가지다. 그걸 막연하게 소비하고 있다면 괴이하고 구부러진 언어에 분별력이 없는 것이다.


언어감수성이 있다면 대화를 통해 우린 아픈 존재가 되고, 상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냉동된 대화, 모범적인 대화에 무력감마저 느낀다면 대화적 감수성이 사라진 것이다. 그냥 하던 것이니 다시 공부하고, 불평하면서도 다시 암기한다. 마치 술이 깨자마자 말짱한 정신상태를 오래 유지하지도 못하고 다시 술을 찾는 중독자처럼 냉동대화를 다시 찾으며 귀한 삶의 자원을 허비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지?’라는 자성이 생기지만 습관처럼 다시 냉동대화를 찾는다. 맥커뮤니케이션이 지배적인 의사소통 양식인 곳에서는 다수가 중독이나 폭력에 종속된 삶을 살 수 있다. 맥도날드화된 대화에 종속되면 우울함과 불안을 쉽게 느낄 수밖에 없고 중독성이 있는 물질(예를 들어 술, 온라인 게임, 쇼핑)에 탐닉하게 된다.


인간의 뇌는 지루하거나 불편하거나 불쾌한 것을 피하고, 새롭고 재미있으며 스스로 주도하는 것을 좋아한다. 매일 지루하고 불편하고 불쾌한 언어적 경험을 감당해야 하는 직원은 자신의 뇌에 즉각적인 자극과 긍정적인 보상을 주는 중독적 습관에 의존하곤 한다. 본인이 감수해야 하는 고립된 감정과 언어노동을 주변 타자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맥도날드화된 대화의 폐해는 그렇게 전 사회적으로 전염되고 확장된다. 맥도날드화된 대화에 관한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뭐라도 해야 한다.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삶을 다시 찾아야 한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706

작가의 이전글대화의 미래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