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이 넘치는 멀티링구얼 대화자들
복수의 언어자원을 교차적으로 사용하는 멀티링구얼 캐릭터들이 미디어에서 매력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국내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온 주인공 유진 초이는 조선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성장한 장교다. 조국으로 돌아와서 여러 상황마다 영어, 일본어, 한국어, 혹은 다양한 동작이나 표정의 기호자원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보인다.
디즈니 영화 〈릴로 & 스티치 Lilo & Stitch〉의 스티치는 영어를 어중간하게, 그러나 매력적으로 사용하는 캐릭터다. 하와이에 정착한 외계인인 그는 영어를 배웠지만 사람들과 소통할 때 외계어도 자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스티치는 자신을 잡으러 온 외계인을 영어로 놀리다가 갑자기 외계어를 사용하는데, 그때 외계인은 스티치가 자신에게 나쁜 말을 했다며 화를 낸다. 전략적으로 복수의 언어들을 횡단하면서 대화하는 스티치의 모습이 참 귀엽다.
스티치는 대화 맥락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외계어도 쓰고, 영어도 쓰고, 하와이어도 쓴다. 스티치가 겪는 일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제가 가족애이며 스티치는 ‘family’를 의미하는 ‘Ohana’라는 어휘를 자주 사용한다. 관객은 ‘family’라는 익숙한 영어 어휘와 달리 ‘Ohana’를 들을 때마다 묘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렇게 보면 미국 토크쇼에서 어색하게 영어를 하는 정국, 모든 언어를 어중간하게 사용하는 스티치, 서울에 살면서 경상도 방언을 사용하는 우리 이웃 모두 이상한 말을 하는 결핍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존재성으로부터 특별하고도 구별되어 보인다.
누군가 언어를 섞어서 사용하는 캐릭터를 바라보며 시청자는 왜 호기심을 가질까? 콘텐츠 제작자는 언어들을 혼합하여 사용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개발하거나 발굴하려고 애쓴다. 어쩌면 한국인 힙합 뮤지션들이 한국어와 영어를 횡단하며 (심지어 중국어나 일본어 어휘까지 조합하면서) 곡을 만드는 이유도 그런 것 아닐까? 언어들이 그렇게 공존하고 교차될 때 익숙한 의미는 낯설고도 창조적으로 재조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언어들이 매력적으로 들리는 장면은 여러 영화에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에 나오는 제이미와 오렐리아의 대화를 좋아한다. 콜린 퍼스 Colin Firth가 맡은 제이미 역할은 애인에게 차이고 한동안 프랑스의 조그만 도시 마르세유에서 집필 활동을 하는 영국인 작가다. 그곳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살림 도우미 오렐리아를 만난다.
둘은 대화를 나누면서 호감을 느끼고, 사랑을 싹틔운다. 그런 중에 오렐리아는 자신의 모어 포르투갈어로 제이미에게 말하고 제이미는 오렐리아에게 영어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는 상대방 언어의 지식이 부족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대화는 대화답게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안타깝게 둘은 헤어지는데 제이미는 영국에서 오렐리아를 그리워하며 포르투갈어를 배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용기를 내어 다시 오렐리아를 만나러 간다. 제이미는 오렐리아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동네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이미 : (포르투갈어) Claro, n ̄o espero que você seja t ̄o tolo quanto eu e, claro, prevejo que você diga n ̄o… mas ← Natal e eu só queria… verificar. [물론, 당신이 나만큼 바보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당신이 거절할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요.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오렐리아 여동생 : (포트투갈어) Oh, Deus, diga sim. seu idiota magro. [아 좀, 알았다고 해. 말라빠진 멍청아.]
오렐리아 : Thank you. That will be nice. Yes is being my answer. Easy question.[고마워요. 좋을 것 같아요. ‘좋아요’가 제 대답이 될 것 같아요. 간단한 질문이니까요.]
제이미 : You learned English? [영어를 배웠어요?]
오렐리아 : Just in cases. [혹시 몰라서요.]
제이미만 재회를 꿈꾸며 오렐리아의 언어를 배운 것이 아니었다. 오렐리아도 어찌 될지 모르니 “Just in case” 영어를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어에 상대방의 언어를 보태며 명민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런 그들이 어리숙하게 보일 리가 없다.
단일한 언어만 사용할 수 있는 정체성과 관계성을 폄하할 건 없다. 마찬가지로 복수의 언어들을 교차적으로 사용하고, 모어를 사용하면서 다른 언어도 보태며 대화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할 건 없다. 그것 역시 고유한 자신만의 삶이고 멋진 대화의 기술이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