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코엘료 책, 그리고 'About Time' 영화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일부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1. 오늘은 감정을 통제하기 쉽지 않았다. 비가 내린다. 비 내리는 날은 일이 잘 되기도 하는데 오늘은 신통치 않아 작업을 중단하고 책 2권을 훓어보고 밤엔 영화 하나를 봤다. 하루가 거지 같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오늘 내가 몸소 체험한 감정의 늪과 재생을 나누고 싶다.
2. 우연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훓었다. 우연히 발견한 ‘상실의 시대'이었다. 이런 책은 거지 같은 감정을 늪에 빠뜨린다. 오늘 같은 날 오래 붙들고 읽지 말아야 한다. 허무와 비탄에 빠질 수 있다. 아니, 앞으로도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대충 봐야 할 책이다.
3. 난 하루키가 쓴 책 중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에세이를 유일하게 좋아했던 것 같다. 그건 킨들로도 읽고 책으로도 읽었다. 그 책에서 전달되는 감성적 일상이 다 내 것 같아서 그의 다른 에세이도 읽었다. 그러나 다른 건 또 신통치 못했다. 그의 소설은 더 최악이다. 주인공은 누군가를 찾는다. 떠난다. 존재의 모험이랄까? 그러나 출구는 없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겉돈다. 자아를 자각하고 절망을 인식하고 위로와 재생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게다. 그러나 난 그저 텅 빈 느낌을 갖는다. 책을 몇번이나 내팽개친다.
4. 그러다가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보았다. ‘흐르는 강물처럼’ 같은 에세이가 제대로 마음에 꼽힐 때가 있다. 그의 글은 쉽고 일관된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 거지 같은 감정에 재생이 시작된다. 평단이 그에 관해 어떤 비평을 하든 신경 쓸 것 없다. 코엘료의 글은 따뜻한 감성이 있고 작가의 일상과 크고 작은 꿈 이야기가 있다. 여행이 있고 순례자적인 삶의 여정이 소개된다. 위선과 거짓을 고발하면서 겉돌지 않는다. 선명한 목적지향성이 있다. 지금 당장 어딘가 며칠 여행을 간다면 난 코엘료의 책을 가져갈게다. 내가 만약 작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코엘료와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그는 유신론자로 삶의 위대함과 자유의 간절함을 위트있게 노래한다.
5. 코엘료의 글로부터 오늘 하루가 귀하고, 지금이 귀하고, 사랑은 아름답고, 불확실한 삶조차 애착이 생긴다면 (책을 그만큼 읽었다면 벌써 늦은 밤이 될게다...) 자기 전에 ‘About Time' 영화를 보라. 2013년 한국에서도 개봉된 로맨틱 코메디다. 그런데 거지 같은 날에 하루키의 소설과 코엘료의 에세이를 선행적으로 학습한다면, 로멘틱 코메디의 내러티브에 철학적인 주제가 장착된다. 영화 속에 사랑스런 대사가 너무 많았다.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며, 아들이고 다시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상이 어쩌면 그렇게 코엘료의 에세이와 잘 맞는지... 오늘 난 운이 좋았다. 주의사항이 있다면 레이첼 맥아담스에 너무 빠지면 안된다. 지나치게 사랑스런 여인이다. 영화의 이미지는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가끔 독이 된다.
6.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장면은 이것이다. 남녀주인공이 처음으로 만나 말을 교환할 때이다. 초면에 서로 얼굴을 전혀 보지 못하는 깜깜한 카페에서 서로에게 말을 나누며 그들은 호감을 갖는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시각적, 혹은 공학적 매체를 통한 재현도 없다.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방향감각을 유도하는 어떤 발판도 없는, 실제 영화 화면에서도 그냥 깜깜한 상태에서 말만 교환되는 1-2분 정도의 시간 동안 아주 묘한 흥분감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시각적 형상화도 없을 때 나눠지는 (사랑의) 언어였다. 어떤 현실을 규정하거나 암시하는 메타포가 전혀 없을 때 나눌 수 있는 언어의 능력을 상상해볼 수 있다.
7. 이런 걸 생각해보자. 해리포터를 영화나 기타 재현물롷 처음 본 사람, 책으로 보고 영화를 본 사람, 책으로만 읽은 사람, 누군가의 구술로 책 내용을 들은 사람은 각각 모두 해리포터에 관한 다른 사고체제를 갖는다. 시각/공학 경로로 재창조된 해리포터(의 이미지만)을 본 사람이 가장 화려하게 해리포터(의 서사)를 기억할 것 같지만 어쩌면 그런 이유때문에 가장 한정적이고 탈맥락적이며 개인이 속한 집단이나 시대적 풍조에 의해 축소되고 채색된 방식으로 해리포터를 암기하고 있는 셈일 것이다. 화려한 멀티미디어, 모바일컴퓨터,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호들갑이지만 꼬리가 몸통을 자주 흔든다. 언어를 통한 변화와 회복은 보이지 않는다.
8. 잠깐... 거지 같은 날의 감정적 재생을 제안하다가 다시 내 연구 분야로 글이 새고 있다. 정말 좀 회복이 되었나 보다. 아직도 비가 조금 내리는 것 같다. 비가 오는 날은 잠이 잘 온다. 난 비가 참 달고 좋다. 이제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