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아상블라주 작업
우리는 흔히 ‘프리 토킹 free talking’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대화에 필요하다는 언어지식을 우선적으로 학습한다. 파닉스부터 시작해서 핵심 어휘를 외우고, 문법을 공부하고, 원어민이 사용하는 다양한 표현법을 숙지한 후에 ‘프리한 토킹’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프리하게 토킹이 잘 안되면 다시 혼자서 유튜브를 보거나, 미드에 나온 대화를 통째로 암기하거나, 원어민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다.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를 예시로 두고 다시 생각해 보자. 힙합이 너무 좋아서 더 알고 싶고 배우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힙합을 배워야 할까? 힙합에서 최고로 꼽히는 곡을 선택하고, 리듬과 가사를 난이도별로 나누어 혼자서 공부하면 될까? 랩이 잘 안될 때마다 박자를 쪼개어 분석하고 유명 래퍼의 곡을 비슷하게 흉내만 내면 될까? 혼자서 분석하고 따라하고 외우는 힙합 공부는 금방 지루해지거나 어렵게만 느껴지고 흥미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힙합을 알아가려면 일단 여러 곡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듣고, 보고, 그리고 대충이라도 자주 불러봐야한다. 비트만 잘 따라가도 힙합처럼 들린다. 표정이나 동작, 또는 옷차림도 중요하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자기 스타일만의 힙합 음악을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힙합의 공간적 자원이 활용되면서 우리는 힙합을 조금씩 알아간다.
힙합 음악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 노래방이란 공간을 예로 들어보자. 노래방은 직장 동료나 가족, 애인과도 갈 수 있는 곳이다. 유명한 곡을 선택해서 보컬 레슨이라도 받으면서 마디별로 끊어서 집중 연습을 해야만 노래방에서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다. 노래방에 있는 공간적 자원으로 ‘그럴듯하게’ 노래를 하는 전략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옷을 근사하게 입고 마이크라도 멋지게 잡는다. 고음을 낼 때 가수처럼 표정을 짓는다. 춤을 잘 춘다면 댄스곡을 선택한다. 소품을 이용해서 재미난 몸동작을 보여준다. 예능 방송 〈복면가왕〉만 보더라도 우리는 누군가 노래를 할 때 가사와 박자만 집중하지 않는다.
대화학습도 다를 바 없다. 말끔한 언어로 입력-저장-출력을 관리하려고만 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엇보다 즐겁게 대화할 수 있다. 대화가 생성되는 여러 공간에 익숙해지고 거기 배치된 자원을 자기 방식으로 조합하고 활용하는 요령만 습득하면 우리는 대화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대화기술은 다양한 재료를 수집하고 편집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아상블라주 assemblage 작업을 연상시킨다.
수집, 집합, 조립을 의미하는 아상블라주는 평면적인 회화 구도에 금속, 나무, 유리, 종이, 플라스틱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붙이고 조합하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 제작의 기법이다. 평면에서 재현되는 콜라주 collage 작품과 구분된다.
아상블라주는 의미를 전달하는 집합체인 셈이다. 여럿이 모여 구성된 의미 덩어리를 굳이 개별적인 양식 mode으로 분해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을까? 어디까지 금속이고 어디가 종이인지, 무엇이 그림이고 글자인지, 어디서부터 파란색이고 빨간색인지 굳이 그렇게 분리하지 않고서도 집합체는 덩어리로 뭉쳐져서 나름의 의미가 생성되고 또 전달될 수 있다.
눈에 보이고 들리는 언어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배치된 비언어적이고 공간적인 자원을 모두 활용하여 대화를 나눈다면 그건 예술가가 아상블라주 작품을 만드는 작업과 다를 바 없다.
대화마다 의미덩어리를 촘촘하게 분리하고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머릿속에 저장된, 혹은 입 밖으로 나오는 언어를 매번 구분하고 암기하지 않아도 된다. 대화라는 의미덩어리를 감당하려면 개별적 양식의 경계가 허물어진 아상블라주적 자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출처 : 대학지성 In&Out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