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실행’을 위한 브리콜라주 활동
대화라는 의사소통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머리에 저장된 경험이나 계획을 언어로 정확하게 ‘다시 꺼내는(나타내는)’ 것이 목적일까? 아니면 대화(의 자원)를 통해 무언가를 해보는 것이 목적일까?
대화의 목적은 재현 re-presentation인가, 아니면 실행 practice인가? 물론 대화의 화자는 기억한 것, 경험한 것을 다시 꺼낸다. 그러나 그것만이 대화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인정하고, 세상을 탐색하고, 일상이나 서사를 전달하고, 정보를 협상하고, 감정이나 의견을 표현하며,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한다.
말하기시험이나 면접이 시작되기 전에 수험자나 지원자가 천장을 보면서 혹은 눈을 감고서 무언가를 달달 외운다. 시험이나 면접에 출제될 것으로 예상되는 모범답안을 암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머리에 모범적인 정보를 저장해 두고 시험이나 면접에서 ‘다시 꺼내어’ 정확하게 재현할 계획이다. 어휘도 외우고, 문장과 대화문도 통째로 외운다.
예를 들면 학원에서 단어시험을 봐서 80점 이상만 집에 보내준다고 하면 학생들은 남지 않으려고 그날 할당된 단어를 공부한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 오직 단어만 달달 외워 시험을 잘 봐야 한다. 그런 공부의 목적은 ‘다시 꺼내고’, ‘정확하게 나타내는’ 재현이다.
그렇지만 시험의 목적, 대화의 목적이 재현일 수만은 없다. 시험 내용이 공지된 이후에 며칠 동안 답안을 작성하는 테이크홈 take-home 평가, 포트폴리오나 프로젝트 보고서를 준비한다면 학생들은 머리에 저장한 것을 다급하고도 정확하게 다시 꺼내지 않아도 된다.
모범답안도 없으니 달달 외우지 않아도 된다. 교수나 동료에게 물어볼 수도 있고,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인용하고 편집할 수도 있다. 재현의 활동보다는 다양한 자원에 접근하고,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적절하게 가감하고 정리하는 편집자와 창조자 활동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허락된 자원은 늘 제한적이라서 ‘실행’을 브리콜라주 bricolage 속성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브리콜라주는 손에 닿는 여러 재료를 창조적이면서도 재치 있게 조합하는 기술이다. 가용한 자료가 무작위 순서로 선택되고 배치되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든 최선을 다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인디언식 기술로 봐야 한다.
브리콜라주 작업의 쉬운 예시라면 집들이 음식을 갑작스럽게 준비하는 과정이다. 제한된 시간 동안 가용한 음식 재료만으로 준비한 상차림이라도 집주인에게나 방문자에게 큰 만족을 줄 수 있다. 이전에 유튜브에서 봐둔 요리법을 참조하기도 하고, 친구가 와서 돕기도 하고, 일부 음식은 배달로 시킨 것이다.
며칠 전에 장을 봐둔 것도 있고, 얼떨결에 만든 소스가 식재료의 기본 맛을 내게 한다. 다른 상황과 목적으로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면 동일한 결과물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브리콜라주 작업에 능숙한 편이라면 어떤 요리를 만들더라도 동일한 수준의 문제해결능력이나 창의적인 편집능력이 발휘될 것이다.
집들이가 아니더라도 머리로 외워둔 요리법을 주방에서 재현하긴 어렵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은 대개 임기응변으로나마 뭐든 실행하고 그럴듯하게 완성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어가 아닌 제2언어로 대화를 나눌 때도 브리콜라주 작품을 만들 듯이 ‘실행’해야 한다.
가용한 자원을 점검하고 전략적으로 조합해야만 어디서 누구와 하든 대화는 대화다울 수 있다. 대화적 자원이 언제나 풍성한 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대화 환경일 수 있고, 대화 주제가 까다롭거나 관련된 어휘도 잘 모를 수 있으며, 상대방이 비협조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브리콜라주로 만드는 대화라면 망할 일은 없다. 그럴듯한 대화는 누구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뿐만 아니다. 영어든 한국어든, 서사든 논증이든, 소설이든 논문이든 무언가를 말이나 글로 만든다면 모두 브리콜라주 작업이다. 연구자나 작가는 텅 빈 컴퓨터 화면 앞에서 처음-중간-끝, 혹은 서론-본론-결론 순서로 한 문장씩, 한 페이지씩 차근차근 채우지 못한다. 내가 일하는 방식만 봐도 그렇다. 인지적으로 구획을 나누어 머리에 입력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효율적으로 꺼내 쓸 수가 없다.
그보다는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온라인) 메모장, 책의 여백, 태블릿 PC 등에 적어두고 붙여둔다. 커다란 듀얼 모니터에 여러 창을 띄워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고 수집하는 동시에 편집 작업이 갑자기 시작되기도 한다. 동료와 대화도 하고, 강의도 하고, 회의도 하다 보면 그렇게 구상하고 편집해 둔 핵심 주장, 논거, 예시 자료 등이 삭제되거나 달라진다. 아웃라인 작업을 할 때는 영어로도 하고 한국어도 활용한다.
나는 그림이나 도표를 아이패드 화면에 그려보면서 개념을 정리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연구자료 관리 앱으로 사용하는 에버노트에 간단하게 붙여두거나 메모해 둔다. 내 책상에는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다른 포스트잇이나 메모지가 여럿 있고, 태블릿 PC, 노트북, 종이 출력물,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내가 구체적인 어떤 개념을 글로 옮기겠다고 작정하더라도, 자료를 취합하고 글을 편집하는 실행 과정 중에 처음 만든 텍스트는 상당 부분 삭제되거나 수정된다. 본격적으로 초고 작업을 시작하면 원고는 빨간색, 파란색 등으로 칠해지고, 화살표, 점선, 메모 등이 여백에 채워진다. 여러 창을 띄우고, 사전도 찾아보고, 임시 파일에 그림이나 글을 오리고 붙이면서 다시 편집한다. 직접 인용된 자료는 따옴표를 붙이고, 다음에 다시 수정해야 할 부분은 색깔로 표시하고, 참고문헌이 불확실하다면 메모를 달기도 한다.
해외 출판사가 제작하는 편저서나 공저서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저자들의 국적이 다르고 서로 친밀한 관계도 아니라면 브리콜라주 작업은 더욱 빛을 발한다. 저자들은 서로 메일을 보내고 대면 회의로 말을 섞는다. 독일인 학자는 자신이 읽은 독일어 문헌을 언급하고, 미국인 학자는 자신이 속한 대학에서 수집한 자료를 인용하려고 한다. 각자마다 익숙한 출처에서 가져온 자료들이 산만하게 섞인다. 서로의 경험, 기억, 감정, 의견이 무질서하게 보태진다.
이와 같은 작업물은 여러 색깔로 그림을 파서 넣은 직조물 태피스트리tapestry 작품을 연상하게 한다. 그럭저럭 원고를 만들고 심사위원이나 편집자의 피드백을 받는다. 원고를 다시 서너 차례 수정하는 동안 처음 만든 원고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거나 바뀐다.
그림과 도표로 시작된 아웃라인부터 초고와 수정 작업을 거치게 되면 내 머리로부터 전달(재현)된 논점이 이제 얼마나 남아 있을까? 삭제되고, 편집되고, 여러 출처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용된 언어까지 섞이면 이제 ‘재현’ 작업은 중요하지 않다. 출판이라는 ‘실행’의 과정과 결과만 남는다. 똑똑한 머리로부터 텍스트로 만든 것이 아니다. 성실한 몸과 주변 환경 덕분으로 편집이 종결되고 저서가 출간된다.
대화라는 의사소통 역시 ‘실행’이 돋보이는 브리콜라주 활동이다. 대화의 목적이 재현일 때만 맥도날드화된 대화(교육)는 명분을 얻는다. 그러나 우리는 대화할 때 머리에 외워둔 것을 정확하게 꺼내고, 경험한 사건을 온전하게 재현하지 못한다.
대화는 의사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의사소통을 위해서 ‘수행’하는것이다. 어떤 글을 쓰려고 할 때만 글이 계속 수정되는 것처럼, 대화 역시 무언가를 위해 실행이 될 때만 말 차례도 바뀌고, 화제도 달라지고, 서로의 말도 보완될 수도 있다.
출처: 대학지성 In & Out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