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love, languages 9

반지성주의를 경계한다

by 신동일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일부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1. 제 연구활동은 언어-교육-사회의 권위주의, 집단/전체주의, 반지성주의, 근본주의를 경계하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경계를 적용하면 군사정부를 거치며 반민주적이고 위압적인 통치의 관행을 보여준 지금의 '국민의 힘' 정당을 지지하긴 쉽지 않았습니다.


2. 그러나 국회 안에서조차 문제적 상황을 예단하고, 즉각적으로 표결로 처리하고, 법안을 당장 집행시킨 민주당 역시 불편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책을 집행하겠다고 발표를 하는데 관계부처에서는 전달받은 바가 없다고 말합니다. 자유와 다양성의 가치가 보장되려면 밉던 좋던 절차적 민주주의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일이 성사되지 못한다고 화를 내고 밀어 붙이면 안됩니다. 못난 놈은 빼두고 그냥 잘난 놈이 알아서 하면 안됩니다.


3. 싸울 땐 싸워야죠. 그러나 우파-좌파 진영의 진실 싸움보다는 진실의 효과를 두고 능숙하고 그리고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보다 지성적인 정치인을 이제 만나고 싶습니다. 국가든 시장이든, 어느 한편에 힘을 순진하게 실어줄 수 없습니다. 좌파도 우파도 필요한 환상을 붙들고 있는 것이지 불멸의 가치는 없습니다. 지금은 복잡한 세상이고 문제 해결은 쉽지 않습니다. 삶의 가치, 재미, 실용, 상호협력의 가능성이나 횡단적인 의미협상도 중요합니다. 짧고 거친 대립의 언어보다 좀 더 길게 조곤조곤 따지고 설명해주는 정치언어를 원합니다.


4. 학계도 반지성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제가 서 있는 학계에서는 좌/우의 거시 담론, 구조화된 권력의 질서를 다루는 것도 좀처럼 허락되지 않지만, 다르게 읽고, 길게 쓰고, 낯설게 질문하고, 논쟁을 시작하는 것을 피하거나 폄하하는 반지성주의 풍토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아는 얘기, 자신들이 구축한 질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배제하고 경원하는 권위주의 풍토가 있습니다.


5. 젊은 학자들의 씨가 말리고 있는데, 아직도 신참들은 나서지 말고 미소로 화답하고 그저 좋은 말로 응대하며 대기만 할까요? 갈고 닦고 또 닦아서 교수나 되어서야 그것도 몇 년이나 더 지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까요? 학회에 나가서도 두리뭉실한 말로 사랑방 만담만 보태드릴까요? 연구자가 되라는겁니까, 아니면 홍보지 기자로 살라는겁니까?


6. 반지성주의와 권위주의를 조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지금 질서만 지키겠다고 작정한 이기적인 기득권임을, 미디어 등의 권력으로부터 호도된 담론의 적극적 소비자임을 기억합시다. 특히 반지성주의는 가정이든 정치판이든 교회든 이견을 지배하기 위한, 차이와 다양성의 가치를 감추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이념임을 기억합시다.


7. 역사적으로 보아도 반지성주의가 넘치던 시공간엔 전체주의, 위계적 폭력, 기득권의 독재 정치가 넘쳤습니다. ‘입 다물어. 가만 있어. 아는 척 하지 마.’ 예, 그렇게 예쁘게 웃으며 박수치며 그들이 듣고 싶은 말만 하십시요. 거긴 단일하고 획일적인 곳이며 언제든 누군가의 결핍을 찾아내서 배제하고 차별할 수 있는 곳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침묵을 선택할수 밖에 없으며 지적당한 자신의 결핍을 놓고 자책할 것입니다.


8. 매 맞으며 아프다고 호소하는 체육계의 모든 청년들을 지지합니다. 미투의 희생자로 고통받고 있다고 호소하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어디선가 문제적인 글쓰기로 학술활동에 외롭게 참여하는 분들 응원합니다. 예전에 체육계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청와대가 뉴딜 정책을 내면서 “일등” 국가가 되겠다고 의지를 다졌지요. 국회에선 이항의 대립구조로 문제를 해결하는 듯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일등이 되겠다고, 이항대립으로 문제를 즉각 해결하겠다면, 아직도 오랫동안 구조화된 차별과 권력에 대해 깊게 성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9. (미셸 푸코 논점을 차용하면) 이제 '정치권력만을 바꿀게 아니라 기존 체제에서 일상적으로 구조화된 품행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대항품행을 우리가 일상적 언어로부터 표현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우린 정치권이든, 체육계든, 학계든, 반지성주의와 권위주의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10. 서로가 아프다고 더 목소리를 내 주세요. 말과 글로. 더 길게. 더 자주... 많이 안 읽혀도 좋아요. 어디 멋지게 안 실려도 좋아요. 그걸 읽지 않는 자들은 계속 읽지 않을겁니다. 그러나 글로 남겨두면 읽는 사람끼리는 읽고 서로 힘이 됩니다. 쓴 사람은 위로와 힘이 생깁니다. 가만 있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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