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렙과 같은 청년
1. 성경에 등장하는 갈렙은 분명 울보였을 것이다. 올림픽 방송 같은 걸 보면 긴 세월을 준비하고 기다려 온 선수들의 비장함에 관한 묘사가 있다. 올해 올림픽을 인기 종목이든, 비인기 종목이든, 선수든, 감독이든, 한결같이 땀흘리며 대회를 준비했을터인데 그게 미뤄졌으니 얼마나 서운하기도 했을까? 그들의 서사를 보면 늘 마음이 짠해진다.
2. 간절한 선수들을 보면 승리해도 운다. 실패해도 운다. 얼마나 소망하고,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기도했을까? 절박하다. 다른 길도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자신감이나 패배감이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채, 너무 간절한데, 젠장, 될 듯, 안될 듯, 그래서 믿음으로, 꿈으로, 그런 시간을 채우지 않고는 도무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실패해도 운다. 성공해도 운다. 우는 걸 봐도 운다.
3. 눈물이 와락 나는 사람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거나 (또 그런 이유로) 대개 자격은 모자라지만 그럼에도 감히/담대히 꿈을 품는 지극히 평범하거나 평균에서 모자란 사람들이 많을게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는 것이 처음엔 어린 선수들에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누군가의 허무맹랑한 약속이었을까.
4. 꿈쟁이들이 마음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비전을 나누기만 하면 폄하하고 깐죽대는 다수/주위 사람들 때문이다. 올림픽에 나가기까지 선수들을 돕고 격려하기는 커녕 얼마나 주위에서 깐족대는 사람들이 많았을까. 창세기 37:19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이렇게 비아냥댄다: "저기 꿈쟁이가 온다." 참 미운 년/놈들. 그러나 방법이 또 있을 것도 없다. 어디 조용한 곳에 기도하러 갔다가 또 울 수 밖에. 꿈을 꾸는 건 쉽지 않은 일상의 선택이다.
5. 갈렙은 45년 동안 약속을 붙잡고 꿈을 꾼 사람이다. 4년을 기다려도 눈물샘이 감당 못할 만큼 고이는데 45년을 품은 꿈이 어찌 가슴에 고여있을 수 있었을까? 눈물로 흘러내리고 다시 꿈을 꾸고 다시 흘러 버리며 그렇게 견디었으리라. 안 봐도 보인다. 오만하거나 허망한 꿈이었다면 가나안 사람을 보고 자신은 그저 메뚜기 같다고 낙심만 했을 터이다. 정말 그렇다. 믿음도 없고 꿈도 없다면 (전보다 더 많이 소유한 지금조차도) 우린 메뚜기처럼 보고 또 보인다.
6. 기독서사를 기복적이라고 사람들은 놀리지만 젊은 시절에 내가 외국에서 공부할 때는 정말 기복으로 버틴 것 같다. 알고보니 그 복이 참 깊고 넓은데 못난 우리들이 마음대로 오용할 뿐이었다.
7. 갈렙과 같은 청년의 심장을 가진 분들을 응원한다. 지금은 꿈꿀 세상도 아니라는 고통과 호소도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꿈꾸는 청년을 지켜본다. 성경의 이사야 챕터 32:8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나도 아프다. 내가 발휘하는 능동성의 끝도 보인다. 그래도 존귀함의 꿈을 아직도 꾸고 싶다. 꿈도, 창조력도, 영향력도 눈에 사라지는 시대에 갈렙의 청년들이 여전히 아름다운 꿈으로 존귀한 일을 계획하길 기대한다.
8. 꼼짝도 할 수 없을 땐 너무 애쓰지 말고 하나님의 타이밍에 인생을 맡겨야 한다. 갈렙도 그러했으리라. 요한복음 15:5에 이런 영어구절이 있다. "Yes,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For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어쩌면 내 망칙함과 무력함을 고백할 때 새로운 바램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다시 직조될 수 있다. 난 그렇게 여전히 믿는다.
9. 오늘 내 기도는 그래서 이렇다: "하나님, 진짜 항복. 당신의 도우심 외에는 기댈 곳이 어디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