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love, languages 12

좋은 직장, 좋은 정치

by 신동일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1. 교수로서 일하기 좋은 대학/학과는 이런 곳이다. 누군가는 연구활동에 전념한다. 누군 잘 가르치려고 교재도 쓰고 강의준비도 더 한다. 누군 학교 행정을 맡는다. 누군 흔쾌히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돕는다. 누군 온정이 넘치며 타인을 배려하고, 누군 엄정하며 상식을 환기시킨다. 누군 원인을 숙고하고, 다른 누군가는 해결안을 집행시킨다. 구성원들은 서로의 연약함을 질책하지 않고 각자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며 민주적 절차와 예의를 갖춘 말과 글을 나눈다.


2. 그곳은 정말 좋은 곳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교수들 만큼이나 학생들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은 교수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 누군 교수님과 연구를 해보고 싶다. 누군 추천을 받고 취업을 하고 싶다. 학생들에게 획일적으로 하나의 가치를 따르라고 강요할 순 없지 않은가.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곳엔 학생들이 숨 쉬고 지낼 만하다. 현미경으로 세상을 봐도, 망원경을 세상을 봐도, 아니 아무 것으로 보고 싶지 않아도 다 괜찮은 곳이다.


3. 글을 쓰다 보니 그곳은 정말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의 짧은 생애사를 놓고 보아도, 한 때 우린 (특정한) 연구에 전념했지만, 다른 연구활동으로 이동하기도 하기도 하고, 학교 보직을 맡을 때도 있고, 학교 일보다 학생을 도와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학교 일엔 도무지 전념하지 못할 때도 있다. 5-10년만 지나도 우리 삶의 무게 중심은 달라지곤 한다. 근심이 생기면 삶의 무게중심이 바뀐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기만 해도 일상의 의례는 흔들린다. 그런 이유로 잠시 연구가 삐끗해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학교를 잠시 떠난다고 해고, 그곳은 누군가를 섣불리 배제하고 소외시키지 않는다.


4. 그러나 그런 곳은 잘 없다. 대개 어떤 센 사람(들)이 어떤 명분으로나 친밀함으로 파벌이나 위계를 만들고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전체적인 가치로 우월화시키고 자연화시킨다. 주류와 비주류를 만들고, 다수와 소수를 만들며, 소속과 배제를 조장한다. 힘이 센건 문제가 아니다. 어디서나 힘 센 사람이 있고 또 필요하다. 그러나 힘이 세다고 인과적 문제-해결을 간단하게 호도하고, 정보와 기회를 선점한다면 그들은 권력을 오용하는 것이다. 거긴 절차적 민주주의, 차이와 다양성의 가치를 폄하하는 곳이다.


5. 그들은 때로는 연구실적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어떨 때는 학생이 갑자기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학교의 경쟁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더니 구성원간의 일치와 화합이 갑자기 중요해진다. 어떨 땐 투표를 하자고 하고, 어떨 땐 구술로 합의하자고 한다. 어떨 땐 관행이라고 하면서 알아서 대충 처리하고, 어떨 땐 전체가 모여서 결의를 하자고 한다.


6. 그곳은 견디기 힘든 곳이다. 원칙은 바라지도 않는다. 기득권력의 필요와 욕망을 거칠게 휘두르는 곳은 그저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는게 좋다는 선량한 선생님들을 불편하게 한다. 어디든 휘저으면 진흙탕이 되는데, 권력을 오용하는 사람들 옆에선 평안을 유지하며 지내기란 쉽지 않다. 센 사람이 다수에게 특정 가치와 품행을 갑자기 환기시키는 건 그게 늘 중요해서가 아니다. 그건 본인이 그나마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하는 것이거나, 정치적인 필요가 발생한 것일 뿐이다.


7. 그들은 조금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위계와 파벌을 확인하고 ‘우리’와 ‘그들’을 분리한다. 그곳은 대개 서로 다르게 가르치고 연구하는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도 비아양댄다. 누군가가 늘 맞는 곳은 다른 누군가는 늘 틀린 곳이다. 비민주적이고, 반지성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권력/집단의 획일된 가치를 덕목으로 삼는 곳이다.


8. 여러분의 자녀라면, 애써 잘 가르친 학생이라면, 어느 직장에서 일하길 원하는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는 곳에서, 어리숙하거나 속도가 나지 않아도 절차적이고 대화적인 민주주의를 신뢰하는 곳에서 일하길 원한다.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들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잘난 사람들은 못난 사람들이 감당하고 있는 삶의 시선과 경험과 가치를 결코 품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못난 사람이 바라보는 또 다른 삶의 귀한 단면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9. 대단한 사람들의 엘리트주위, 파벌주의, 권위주의를 경계한다. 그들이 못난 다른 편의 누군가들에 비해 더 옳다고 해도, 그들은 그곳을 진흙탕으로 만들고, 전체 구성원을 긴장과 대립과 배제로 이동시킨다.


10. 나는 정당정치도 동일하게 바라본다.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꼴통’이 되고,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좌빨’이 되어야 하는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곳이다. 이념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 대화, 설득, 상호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진리라고 하는 것을 그저 믿기 보다는 진리의 효과, 말이 되게끔 마음을 움직이는 수사적 설득력을 신뢰한다. 언어들이 솎이고 언어로부터 움직이지 않는다면 양편으로 나뉜 전쟁만 남는다. 우린 전쟁의 인생, 전쟁의 언어만을 보고 듣고 살아야 한다.


11.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말의 잔치상이 참 좋았다. 대통령이 되고서 의회 안에서 분투하고, 미디어로부터 고전했지만 그래도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조정하기 위해 내놓은 수많은 수사(이게 결국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를 좋아한다. 그는 답답한 대통령이었고 별다른 성취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일지 몰라도 나는 경청하고 말로 설득하고 다시금 조정하는 그의 언어적 실천과 관행이 참 부러웠다.


12. 나는 혁명보단, 우월감보단, 그 어떤 멋진 명분보단, 절차적으로 서로 존중하고 대화하는 민주주의를 선호한다. 심지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난 괜찮다.

작가의 이전글자유 사랑 언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