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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Mar 13. 2021

freedom, love, languages 17

다시 보게될 라면 상무님, 신문지 회장님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1. 오래 전에 공항에서,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들에게 갑질한 라면 상무, 신문지 회장 사건을 다시 소환해본다. 다 지난 사건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동일한 말투로 눈 앞에 보인다. 참 친절하니 우린 좋지만 그들은 어떨까? 승무원에게 컵라면 물 온도를 맞추지 못했다고 혼을 내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신문지로 내려친 상무님, 회장님. 왜 이런 일은 발생할까? 


2. 나도 비행기 많이 탔다. 내 눈엔 승무원과 직원들이 지나치게 친절해 보이는데 도대체 뭐가 그토록 화가 날까? 이걸 라면 상무, 신문지 회장의 못난 인격으로 퉁치지 말자. 좀 더 비판적으로 그곳의 경직된 언어문화가 막말을 허락하는 위계질서를 고착시키는 것으로 생각해보자.     

          

3. 국내 항공사 여승무원들이 과도한 용모와 복장 규제 때문에 불편을 호소한 적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관련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열었고 승무원이 겪는 감정 및 미학적 노동의 부담감이 다뤄졌다. 그러나 토론회를 소개한 인터넷 기사 아래에 달린 댓글이 가관이었다.      

         

4. 예쁜 제복 입고 단정한 얼굴로 웃음을 파는게 원래 서비스 직업이며 여승무원들은 절대 불평하면 안 된다는 비아냥이 가득했다. 비슷한 시기에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된 한국의 성평등 순위(전체 135개국 중에서 108위였다)가 과장이 아닌 듯했다. 바로 수개월 후... 그 유명한 컵라면 상무님 사건이 터졌다. 컵라면 다시 끓여 오라고 시키고 또 시키다가 결국 잡지를 둘둘 말아 승무뤈을 가격한 사건이었다.       

         

5. 상무님, 아니 고객이 내려치니 승무원은 얼굴을 맞았다. 네티즌들은 그걸 듣고 승무원을 옹호했고 자신의 일처럼 비분강개했다. 분노는 대기업 상무의 품성에 집중되었지만 언어의 테크놀로지화를 연구하는 나로서는 획일적인 용모와 복장, 친절과 순종의 태도, 표준적인 말투를 비싼 상품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구조화한 커뮤니케이션의 언어문화에 주목했다.               


6. 기업이 커지고 표준적인 관리체제가 중요해질수록 고객을 만나야 하는 직원의 언어는 스타일링에 비중을 둔다. 복장과 용모에 관한 규제만큼이나 전달의 내용도 매뉴얼로 통제되곤 한다. 즉, 커뮤니케이션의 맥도날드화 현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승무원의 용모, 복장, 말투를 포함한 모든 의사소통 행위을 일종의 상품으로 보는 것이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모두 상품으로 전환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예쁘고 친절한 언어노동도 상품이고 스타일링으로 잘 포장된 말투도 상품이다. 비싸게 주고 산 컴퓨터나 자동차에 하자가 있다면 불평을 거칠게 하듯이 상품이 된 언어행위 역시 상품으로 비싸게 구매했으니 고객의 이름으로 왕 놀이를 하는 것이다.


7. 말의 내용과 요령은 하나의 매뉴얼처럼 사전에 작성되는데 프랜차이즈 요식업이나 콜센터의 직원이 아니더라도 왠만한 규모의 직장을 다닌다면 누구나 규범적인 언어교육을 받곤 한다. 학교의 언어교육은 말할 것도 없다. 교과서와 시험을 통해 가르치고 배우는 언어는 철저하게 위생화 공정을 거친 것이다. 학생들은 교과서의 문장을 암기하며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EBS 교재로 수능 듣기시험을 준비하며, 일년에 200만명이 넘게 토익 시험을 보고 있다. 학교든 직장이든 너무나 깨끗하게 세탁된 언어가 우리가 사용하고 배우는 언어의 모양이고 능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8. 그러나 말을 매뉴얼로 교정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나 고객님으로 군림하지 못한다. 나도 어디선가, 누구로부터 내 말투의 매뉴얼을 학습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표준화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돈이 전부이고 말이 돈이 되는 세상에선 나와 너의 언어는 규범과 표준에 맞춰진 상품적 가치로 전환시켜야 한다. 적정교육, 적정언어의 사회적 논의는 전혀 없고 언어와 교육의 거대한 공학적 발상만 넘치게 된다. 마치 온라인 게임세계를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는 게임중독자처럼 진짜 언어를 사용하는 나는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지 혼란스럽다.     

           

9. 어쩌면 짜릿한 진짜 언어를 경험한 소수의 자유주의자들만이 언어의 콜센터에서 도망쳐 은밀한 지하세계로 모여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건 메타포가 아닐 수 있다. 하루 종일 통제된 언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학생과 직장인은 몰래 어디선가 밤에 만나 생태적 언어를 사용하는 곳이 진짜로 있을 듯하다. 항공사 직원은 충분히 친절하다. 이제 그만 친절하면 좋겠다. 그들의 말이 우리도 같이 살아가는 말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앞으로 받을 수모가 우리 모두가 겪을 위생화된 말에 관한 사회적 비용이기 때문이다.   


10. 맥도날드화된 말 문화에 대한 충분한 성찰과 비판이 없다면, 두고 보라. 라면 상무님, 신문지 회장님은 다시금 등장하여 우리 눈 앞에서 우리 말의 모양을 두고 시비를 걸 것이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이다. 충분히 친절하지 않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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