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꿈을 꿀 수만 있다면
1. '크리스쳔을 위한 인문학' 책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몇 분과 말씀을 나눌 때만 해도 '내가 감히..' 그런 걸 해보겠다는 생각부터 민망했다.
2. 그러다가 연구실 천장 공사 때문에 묵혀둔 책들을 다시 꺼내고 분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열심히 모으고 메모하며 공부했던 기독 인문서 묶음, 미국에서 공부할 때 편집책임자로 만들었던 교회 소식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리서처로, 학자로, 내가 어떤 푯대로 향하길 소망했는지.. 책더미 가운데 자리 한켠 마련해서 그걸 다시 보는데 눈에서 비늘이 벗겨졌다.
3. 존 스토트 목사님의 1984년 책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서문 중에 형광펜으로 밑줄 친 다음 글은... 마치 빛줄기처럼 보였다.
4. " 이 글을 쓰는 도중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런 일을 하려는 것이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주제넘게 느껴졌다.
나는 ... 전문가가 결코 아니며, 내가 넘어 들어간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특별한 전문 지식이나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나의 주제는 복잡하고, 그에 대해 광범위한 글들이 쓰였으며, 나는 그 중 일부만을 읽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참고 해 냈다. 그렇게 한 주된 이유는, 내가 과감히 대중에게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 잘 다듬어진 전문가의 글이 아니라 기독교적으로 생각하려고 즉 성경의 계시를 오늘날의 긴급한 쟁점들에 적용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보통 그리스도인이 쓴 투박한 아마추어의 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5. 스토트 목사님도 어리석고 주제넘는다고 느껴진다는데.. 나는 오죽할까. 겸손하고도 소박하게 쓸 것이지만.. 될지 안될지조차 모른다. 다른 책 작업도 있어서 몇 년이 걸릴 지도 모른다.
6. 그러나 내 삶의 미학은 그런 것이다.. 해보지 않을 이유를 애써 찾는 것이 구차하다. 비루한 후회를 반복한다면 존귀한 실패도 괜찮다. 아름다움의 의미는 성취가 아니라 방향만으로도 생성된다.
7. <<노인과 바다>> 산티아고 어부는 조각배에서만 커다란 청새치를 잡았지만 결국 상어 떼에게 굴복한다. 낡은 침대에서 사자 꿈을 꾸지만 그의 실패는 예견된 것일지 모른다. 꼬마 마눌린에게 산티아고가 말한다.
"그놈들에게 내가 졌어, 마놀린. 그놈들에게 내가 완전히 지고 말았어."
진 건 아니라고, 그건 아니라고 마눌린이 재차 말하자 산티아고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어린아이처럼 이렇게 응답한다.
"그렇지, 그건 그래. 내가 진 건 그 뒤였어."
8. 내리막이 보인다고 도망칠 이유는 없다. 큰 바다를 향하고 상어 떼와 겨루지 못할 이유도 없다. 사자 꿈을 꿀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