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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Jan 04. 2024

집으로 갖는 길 12

뉴 프렌드.. 그리고 다시 이석원 밴드..

1. “학자는 저술로만 말한다”는 아포리즘을 붙들고 있지만 몸과 마음과 일상을 돌보는 일이 먼저입니다. 약속한 원고가 뒤로 밀리기만 하는데.. SNS 글쓰기를 할 여유는 없습니다.


2. 그렇지만 페북에서 만나는 재기 넘치는 글로 대리 만족을 합니다. 이미 알던 분들하고만 페북에서 소식을 나누곤 하다가 작년부터인가 일면식도 없는 분들과 프렌드를 맺기 시작했는데요..


3. 처음엔 그들의 열정적인 글이 한결같이 생소하게 보이기도 했는데 이젠 서로 충분히 다르면서도 매력적으로 분별됩니다. 울타리 밖 그들은 활기차고, 유머러스하며, 비판적이고도 전투적입니다. 그들은 실패를 자주 경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걸 두고 냉소적이면서도 대범해 보입니다. 자랑질도 넘치는데 그걸 사랑스럽게 전할 줄도 압니다.


4. 인용과 주석 가득한 학술문헌을 읽다가 고작 영화, TV극, 시, 소설 정도가 내겐 일탈과 유희의 텍스트였던 셈이었는데 페북에서 이만한 캐릭터들과 스토리를 만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5. 그들이 올린 글이나 그림의 느낌이, 아니 윤곽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이 명백하게 드러내는 삶의 의례, 혹은 일상의 윤곽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거기에 비춰집니다.


6. 글만으로도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같은 느낌이랄까요.. ‘Like’를 글마다 누르고 뭘 남기고 싶지만.. 낯선 사람이 갑자기 너무 다가가면 스토커로 생각할까 그러진 못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내면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자세가 어쩌면 그토록 각자만의 색깔로 다채롭고도 풍성한지요.  


7. 홀로 분투하는 삶을 감당할 때, 고작 문헌으로나마 스승이나 동료를 만나곤 할 때, 하늘 아래 어딘가 나와 말이 통하는, 나처럼 생각하고 사는 인간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울타리를 크게 넘지 못했던 내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8. 그나마 참 다행입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나만의 고유한 삶을 위협하거나 폄하하는 자들과 거리를 두었고 소박하지만 독립적인 학자의 정체성을 선택했습니다. 오해든 갈등이든 이별이든 나는 감당했고 이겨냈고 나만의 자유와 실존을 지켰습니다. 


9. 무엇보다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서사와 논증을 배우고 깨우쳐서 참 다행입니다. 내가 버티게 해주었고 희망을 품도록 도왔습니다. 그걸 온전히 배우지 못했다면 나는 대면-구술로만 묶여진 누군가와의 관계성에 집착하고 눈치를 보며 실재를 과장했겠죠. 


10. 아마도 1월에는 나올 제 신간 한 코너에 그런 제 삶의 한 켠이 서술된 듯합니다. 아래에 살짝 붙여둡니다. 그리고 올해의 '새해 결심'은 이것으로 퉁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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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시작된 99년 만의 개기일식을 미국 남부의 아주 조그만 호텔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딸이 추천한 이석원 밴드의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가 직접 쓴 책도 함께 보면서 말입니다. ‘언니네 이발관’ 앨범을 모두 다 듣고서는 그냥 ‘별것 아니네’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는 또 이런 생각도 들었죠. 


‘어쩌면 이건 우리 모두에게 익숙했던 속도나 힘의 리듬이 아닐 뿐이다.’ 


음악인 이석원이 2008년에 낸 5집 앨범 타이틀은 ‘가장 보통의 존재’인데 이름과 다르게 그걸로 한국대중음악상 대상(‘올해의 앨범’)을 받았습니다. 밴드라고 하지만 밋밋한 기타 소리만 들렸고 노래라지만 마치 어제 밤에 쓴 일기를 낭독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만의 노랫말과 다를 바 없는 느낌의 첫 산문집 <<보통의 존재>>는 다음 해에 발간되었죠. 글인 듯한 말, 노래를 하지만 글로 전하는 느낌. 느릿하고 촌스럽지만 올곧은 ‘방향’ 혹은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가 밴드의 리듬에 실렸다고 할까요? 


어찌 보면 나도 이석원 밴드처럼 말과 글을 여러 매체에서 옮기며 내 이야기를 전하는‘싱어송라이팅 인생’을 선택한 것만 같았어요. 나는 화려한 삶을 쫓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내 삶의 여러 단면에서 감수성을 높이고 저만의 학술활동으로 존귀한 실존으로 지내려고 합니다. 


연구자로서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저만의 싱어송라이팅 인생으로 버티며 지냈습니다. 내 인생의 궤적이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기를 바라고 있는데요. 딸이 왠지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이석원 앨범과 책을 건넨 것도 같았습니다. 


‘작지만 크게, 창피해도 나만의 고유한 삶을 살거야.’ 그런 생각을 하다가 조그만 침대에서 뒹굴며 쨍쨍한 하늘을 내내 바라보다가 나는 딴딴한 결심을 하나 했습니다. 


‘난 책을 쓸 거야. 내 이름의 책으로 내 기억을 지키고 존귀한 삶을 살거야.’

(제목 미정 신간의 원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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