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동일 Feb 17. 2024

언어와 권력 13

착한 품행에 관한 통치질서 (ft. 이강인 선수의 주먹질)

1. 축구선수의 품행을 두고 정치인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국격“을 운운하며 ”싸가지 없는 사람은 정리해야 한다“고 경고를 합니다. 


2. 이강인 선수가 휘둘렀다는 주먹보다, 거대한 집단이 전달하는 똑같은 말이, 착한 품행의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하극상“이라며 호통을 치는 그들의 엄숙한 표정이 더 불편합니다. 


3. 유럽에서 '어린' '외국인' 선수로 분투하며 살아온 이강인 선수가 국대 팀에서 경계 짓기, 폭력, 타자성에 온전한 감수성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4. 그렇지만.. 저는 그가 이번 일로 너무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착하려고 너무 애쓰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큰 경기에 지고선 앞선 캡틴과 비슷한 표정으로 "너무나도.. 너무나도 죄송하다"며 울어야 할 것 같아서 울려고 애쓰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5. 죽자사자 공부시켰더니 애가 반에서 1등도 못하고 싸움질까지 했다고 학교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부모, 친구, 이웃까지 다 모여서 아이를 세워두고 다그칩니다. "너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니? 우리가 널 위해 어떻게 했는데...."


6. 혼쭐이 나는 아이의 내면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 모인 모두 자책감, 화, 의무감 등의 부정적인 자의식이 넘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배반감으로 호통치는 그들은 국대 청년들에게 일종의 가부장적인 소유의식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7. 아래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착한 품행’을 관리하는 통치질서에 관한 제 소신이며.. 제 신간에서 직접인용합니다:


(1) (...) 개인이나 소수를 향한 은밀한 괴롭힘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사적 공간마저 침범합니다. 다 큰 어른의 영혼을 비루하게 위축시킵니다. 


(2) 멀찍이 거리를 두고, 깔보듯이 쳐다보며, 핀잔 소리가 들리게 하고, 글이나 말로 이상한 소문을 내죠(...) 거만한 권력자들이 좋아하는 다음 말을 나는 참 싫어합니다.


“진짜 착해.”


(3) 착해서 착하다는 걸까요? 착해야 하니까 착하라고 일찌감치 경고하는 셈 아닌가요? 착한 품행을 지시하는 TV 화면의 기호표현들이 너무 불편합니다. 


(4) 고작 나이 몇 살 차이라고, 경험이 좀 더 많다고, 직위가 높다는 이유로, 아니 시청자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며 나이가 어린 연예인은 90도로 몇 번씩 폴더 인사를 반복합니다. 


(5) 말은 늘 상냥하고 예뻐야 합니다. ‘깍듯 인사’를 잘하고 많이 하면 ‘인성 갑’ 혹은 ‘개념돌’이라며 인정받습니다. 그런 착한 품행의 기호로 우리 모두 착해야 하는 사회질서가 구성되는 것이죠. 나에겐 그런 장면이 무슨 조폭 영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6) 여자 아이돌이라면 폴더 인사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배시시 웃으면서 수줍은 듯 개인기 하나라도 할 줄 알아야 하죠. 애교 넘치게 춤도 춰야 할 겁니다. 


(7) 아무리 그렇게 노력을 해도 젊은 ‘여성’ 연예인이 사회정치적 의제를 두고 공개 발언이라도 하면 그동안 쌓아둔 인기는 한 방에 허물어질 수 있어요. 그들은 탈정치화된, 가치중립적 자세만 취해야 하는 ‘착한’ 아이돌이어야 해요(...)


(8) “착해서 고생했다”, “착하니 인정을 받았다”라는 진부한 서사도 다시 봐야 합니다. 착한 인생에 관한 의미체계는 대개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위계적이고 규범적인 지침으로 들립니다. ‘민생에 집중하며’ 성실하고 착하게 살라고 아이돌, 연예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압박하는 통치담론입니다(...)


(9) 나도 예의 바른 분이 좋습니다. 나 역시 공적 업무에서 예의를 갖출 것입니다. 그런 ‘공적 영역의 예의’는 시민 교양과도 같은 것이며 기득권력이 요구하는 ‘착한 품행’과는 다른 속성입니다. 


(10) 반듯하게 예의를 지키는데 기득권력의 시선으로 ‘착하진 않은’ 사람으로 찍히곤 합니다. 반대로 공적 업무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지만 기득권력의 시선으로 ‘착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즉, 공적 예의는 모두에게 필요한 사회적 기술이지만 ‘착한 품행’은 기득권력이 임의적이고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11) 착하면 동화 속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대부분의 ‘듣보잡’ 출신의 반듯한 청년들은 계속 착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냥 묻힙니다. 오히려 착한 것에 집착해서 묻힙니다. 


(12) 착하겠다고 신경을 쓰면, 자신만의 구별된 차이점이나 톡톡 튀는 역량을 소신껏 발휘하기가 쉽지 않죠. 착함에 관한 이데올로기는 자발성과 고유성을 드러내는 자유를 뺏기도 합니다(...)


(13) 당신의 품행 역시 새로운 관계와 맥락을 만나면 전혀 다른 속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득권력의 눈에 들려고 무조건 착하지만 마세요. 


(14) 당신은 일단 당신다워야만 합니다. 아프다면 아프다고 조퇴하세요. 혹시 무시와 차별을 지속적으로 당한다면 화를 내고 따지셔야 합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24-27쪽, <아이돌 스타의 90도 폴더 인사> 중에서)

책 정보: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