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간다는 것

by 동주
간밤의 꿈


간밤에 잠을 설쳤다. 이유 모르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였다. 그러면서 얼핏 꿈을 꾸었던 것 같기도 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7시에 일어나 30분 동안 출근 준비를 하였다. 평소보다 집을 나서는 시각이 조금 늦어 자전거 페달을 급히 밟았다. 송파동 빌라촌의 코너를 돌아, 롯데타워가 보이는 내리막길을 달아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운이 좋게도 신호가 바로 파란불로 바뀌어 자전거 속도를 줄이지 않고 길을 건널 수 있었다.


뺨을 스치는 늦가을의 바람이 꽤 차갑다 느낄 때였다. 그 순간 매우 갑작스럽게 어젯밤에 꾸었던 꿈이 선명한 이미지가 되어 떠올랐다.


꿈에서 나는 죽은 아빠를 보았다. 아빠는 내 시골집 거실에, 살아있을 때랑 마찬가지로 헐렁한 바지만 입은 채 하얗게 마른 등을 돌리고 앉아있었다. 그의 앞에는 낮은 바둑판이 놓여있었고, 바둑 기보 책을 보며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 전에도 몇 번 아빠의 꿈을 꾼 적은 있다. 보통 아빠의 생전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런 꿈이었다. 그런데 어젯밤 꿈속의 나는 아빠 가까이에 앉아 바둑을 어떻게 두는지 가르쳐주기를 청하였다. 꿈에서 나는 정말로 바둑을 어떻게 두는지가 궁금했다. 아마도, 아빠와 다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바둑으로 그 시작을 갖는 게 가장 좋을 거라고, 그러면 어색함이 덜 할 수 있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조금 겸연쩍어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검고 흰 바둑돌을 바둑판 위에 늘어놓고서는 여기서 백이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맞춰보라고 하였다. 나는 백이 따낼 집 개수를 세어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머리를 쥐어짜 내 보았지만 내 꿈에 나온 아빠는 당연히 내가 만들어낸 아빠였으니 내가 그 꿈에서 제대로 바둑을 배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 머리 위로 벽돌 하나가 둘로 쪼개져 떨어졌다. 아빠는 빠르게 손을 뻗어 내 위로 떨어지는 벽돌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아빠 머리 위로도 벽돌 더미가 쏟아졌다. 나는 다급히 손 발을 뻗어 아빠가 벽돌에 맞지 않도록 아빠를 감쌌다.


내 꿈에서 그 벽돌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피할 수 있는 그런 관문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꿈에서 그렇게 생각을 했다.)


아빠가 죽기 전 아주 오랜 시간을 반목했기에 내가 몸을 날려 아빠를 지켜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미워하는 사람이 아빠였는데, 이제 나는 세상에 미워할 사람이 없겠다. 아빠를 이렇게 용서하고 화해하니 마음이 참 좋구나.


그 순간의 마음이 지금 기억에 선하다. 누군가에게 말해준다면 온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참 따뜻했다고 말할 것이다.



잘 살아간다는 것


사람이 “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보통의 삶에 목적이 있을까. 특정한 방향성이 있을까. 우주에서 나의 삶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았을 때 그것은 계량할 수도 없을 만큼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 먼지가 왜 생겼고 왜 부유하는지 그 목적과 방향성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우연히 태어나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이란 그저 살아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잊고 살게 된다.


그럼에도 나도 내 삶을 살면서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고 남에게 자랑할만한 그런 일들도 있었다.


공부도 썩 잘했고, 원하는 대학교에도 들어가 보았고, 취업도 하고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승진도 하였다. 앞으로는 돈도 더 모으고 서울에 아파트도 사서 그 아파트가 얼마 올랐네, 다른 사람들에게 푸념인 듯 자랑삼아 얘기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대로 부끄러운 일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남보다 몸집이 작고 가난한 아이를 반 학생 전체가 괴롭혔던 적이 있다. 반 아이들은 그 친구를 교실 바닥에 엎드려 걸레질을 하도록 시켰다. 순진한 어린아이들이었지만 누구보다 악랄했고, 나도 그 옆에서 동조하거나 방관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일들은 누구보다 작았던 그 아이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내게 사랑을 주었던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절대 해선 안 되는 가시 돋친 말이나 행동을 했던 적도 있었다. 아빠에게는 내가 상처를 받은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아마 아빠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자랑할만한 일들은 그렇게 휙 지나가는 인생의 휘발성 에피소드였다. 그 일을 겪을 때의 기분이나 그 선택으로 얻은 돈이 준 기쁨 같은 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해졌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누군가를 미워했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져 그들에게 어떻게든 사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게 한다. 하지만 이미 그 잘못은 저질러진 후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말과 행동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지나간 사람들을 찾아가 진심의 사죄를 할 수도 없다.


다시 한번, “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죽는 순간에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떠올릴까? 어떤 일에 대해 후회할까?


죽기 전에 자신의 사소한 선택들과 그로 인한 기회비용이나 손해를 후회하거나, 인생의 자랑들을 떠올리며 뿌듯하게 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 말고 다른 것을 선택했어야 했다. 혹은 그 선택으로 돈을 벌 수 있었어서 참 다행이다. 하면서.


그러나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닌 듯 하다. 나는 내 인생에서 하지 못한 사죄와, 그 사죄를 받아야 할 사람들을 떠올릴 것 같다. 혹은 내가 미워하면서 용서하지 않은 어떤 응어리들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나 방식이 어떤 것 일지 어렴풋이 그려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수수께끼들은 혼자서 풀어내고 스스로 채점해야 한다. 채점의 기준이 정해져야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정해지는 것 아닐까?


겨우 꿈 하나로 이런 생각까지 하는 것을 보면, 30대 중반을 지나는 지금은 아마 내 인생의 채점기준을 찾아가는 시간인가 보다. 어쨌든 조상님이 꿈에 나오셨으니 오늘은 "잘 살기 위해" 로또나 사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