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

서른 즈음에 바라보는 연애와 결혼.

by 동칸

1. 내일모레면 서른이다. 어느새 이렇게 되었다. 요즘 또래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연애와 결혼이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게 되면 대화의 주제 절반 이상이 연애와 결혼이다. 어디서 이성을 만나느냐에서부터 우리가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20대 초반에 군대 이야기를, 20대 중반에 취업 이야기를 나누듯 지금 우리들의 관심은 연애와 결혼에 있다.


2. 나이가 들고 머리가 굵어지며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어졌다. 서른도 안된 나이에, 3년 차 직장인이 하기에는 조금 웃긴 말이지만 이는 분명히 사실이다.


나이를 먹으며 경험이 쌓이고 이는 개인의 세계를 공고히 만든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포기할 수 없는 것과 조금은 양보할 수 있는 것, 자신의 가치관과 비전, 신념 등이 점차 확실하고 확고해지며 원하는 이성상 역시 명료해진다. 단순히 “예쁜 여자”에서 ‘예의가 바른’, ‘영화를 좋아하는’, ‘젓가락질을 잘하는’ 등의 형용사가 하나씩 추가되며 이상형의 단어가 점점 길어진다. 시작점과 결승점 사이에 허들이 하나씩 추가되며 결승점까지 도달하는 게 더욱 힘들어지는 형국이다. 나는 상대방의 결승점에 도달하기 힘들고, 상대방 역시 나의 결승점에 도달하기 힘드니 결승점에서 양방이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또한 ‘결혼’을 생각하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해진다. 연애도 시작하기 전에 결혼을 생각하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모르진 않지만,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기회비용’을 생각하게 된다. 이 상대방과 만남으로써 내가 잃게 되는 다른 기회들을 생각하게 된다. 20대 초반과는 다르게 나에게 시간과 기회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음을 알기에 시작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는 연애의 난이도를 높이는 또 다른 요소로 작용한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이다. 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세계에서 삶을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평범했던 일상도 사랑이 더해지면 특별한 하루가 되고,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특별함을 느끼게 된다. 흑백사진 속에 색감을 불어넣어주는, 불꽃같은 강렬함은 사랑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고 이러한 강력한 끌림 없이는 연애를 시작할 수 없다. 이성적인 여러 조건들과 감성적인 끌림 그 어떠한 것도 포기할 수 없기에 연애는 더더욱 힘든 무언가로 변해버리게 된다.


3.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면서 스케치 능력은 배우지도 않고 아름다운 대상을 찾게 되면 언제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듯 사랑을 하고 싶다면 사랑을 할 대상을 찾기에 앞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속 시장원칙에 의해 지배받고, 인간의 가치 역시 경제적 교환가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 그 자체의 인격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학력이나 연봉, 재력에 따라 평가되는 것은 이미 현상 그 자체이다. 자신을 상품화하고 타인과 공정하고 유익하게 교환하여 최대의 만족을 얻는 것, 이것뿐이라면 너무 허무하고 허망하며 슬프지 않은가.


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는 것, 현실과 유리되어있는 말인 듯하지만 이것마저 부정해버린다면 너무나 삭막하다. 한 사람과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별개였던 상호 간의 세계가 합쳐짐을 의미한다. 시장원칙에 따른 교환이라고 보기엔 무수히 많은 외적 변수가 존재하기에 경제적 함수로는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없다. 복잡한 산식의 등호를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변수가 바로 사랑일 수 있다고 믿는다.


4. 결혼은 ‘당연히’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느샌가 나이를 먹어 당연히 서른 살이 된 것처럼 어느 순간 당연히 결혼하게 될 줄 알았다. 나의 아버지와 같은 멋진 아버지가 되어서, 부인과 사랑하고 서로 의지하며 생애를 보내게 될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지금도 부모님은 둘이서 영화도 보러 가고, 유명한 카페와 맛집을 탐방하고, 꽃놀이도 가며 즐겁게 데이트를 즐기신다. 30년을 넘게 함께 살았음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5. 인연이 있음을 믿는다. 나의 세계를 보여주고, 그녀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날이 올것을 믿는다. 두 개의 세계가 만나 상호 간에 밀물과 썰물을 그리며 교류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더욱 견고하고 확장된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을 기대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듯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은 나의 일이 되기를 기대한다.


2019.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