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와 껄무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by 동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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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 한 바퀴 돌아 재자리로 돌아오거나 돌아감.


1.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중 하나. 평범하거나, 비범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주인공 생의 끝자락에서 과거로 회귀 - 본인만 알고 있는 미래의 정보를 통해 기연을 선점하고, 두 번의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통해 해피앤딩으로 끝이 난다.


투자를 하면서 무수한 후회와 껄무새가 등장한다. 살걸 - 팔걸- 사지 말 껄 - 팔지 말 껄 - 껄껄거리며 후회와 헛웃음 그 사이에 녹아버린 계좌를 보며 수십 번도 더 생각한다. 이때 사서 이때 팔았으면 얼마가 되고, 그걸 다시 다른 종목을 사서 고점에 팔고, 이걸 몇 번 반복했으면 지금쯤 내 계좌에는 100억 도 넘게 있겠네. 와 같은 현실성 없지만 중독성 있는 망상. 단순한 망상이 점차 구체화되면 이게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가치가 충돌하게 된다.

지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선택지가 있다면 돌아갈 것인가.


비트코인을 예시로 들어보자. 내가 20살인 2010년도에 비트코인은 0.1불이 채 되지 않았다. 지금은 3만 불을 넘지 못하고 있지만, 작년 불장일 땐 7만 불을 넘보기도 했다. 2010년도에 1,000불(120만 원) 정도를 0.1불에 풀매수를 했다면 10,000BTC를 소유했을 것이고, 이는 2021년에 보수적으로 6억불 - 7,000억 수준의 자산이 되어있을 것이다. 7,000억으로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행복하지만 쓸데없는 뇌내망상은 차치하고, 지금 20살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자.


2. 현재 내가 32살이니 20살로 돌아간다면 12년 정도의 시차가 발생한다. 결론적으로 12년 동안의 삶이 지워진다. 신입생, 입대와 전역, 복학, 알바, 공부, 취준과 취업, 신규 - 대단하진 않지만 치열하게 살아왔던 내 20대를 함께했던 모든 관계가 사라진다. 관계와 동시에 기억의 당위성이 흔들린다. 기억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조현병 환자의 망상과 나만 기억하는 추억은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인간은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고 기억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군대를 전역하고 친구들과 인도네시아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는데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나 홀로 알고 있다면, 나의 추억과 망상병 환자의 구체적이고 정교한 망상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외로움과 고독, 상실감을 견뎌낼 수 있을까.


또한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취급되어야 하는가. 20살이 된다면 그간 내가 경험했던 것들은 '없었던'일이 되는 걸까, '없어진'일이 되는 걸까. 기억과 경험은 삶을 비가역적으로 만든다. 없었던 일이든 없어진 일이든, 나의 시간이 회귀되었다 하더라도 사고가 회귀하진 않을 것이기에 나는 20대를 다시 겪는다기 보다, 30대를 연속해서 겪을 것이다.


10년 뒤 7천억 부자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20대에 쌓아 올린 관계가 모두 사라진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12년간의 기억을 가진, 32세 직장인의 사고를 가진고 20살로 살아가는, 앞으로 다가올 굵직한 사건들을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는, 조현병으로 의심되는 20살로 회귀한 나는 우울증약을 장복하며 과연 정상적인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3. 12년은 너무 기니까 하루나 반나절 정도의 회귀를 계속할 수 있다면. 상한가 종목을 미리 사두는 걸 반복하면 하루에 30%씩 복리로 한 달만 돌려도 2,600%, 부자 되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간 쌓았던 관계도 기억도 다 같이 가져가며 부자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반나절 회귀가 계속 가능한 인간이 과연 상식을 가지고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무슨 짓을 해도 회귀하면 없었던 일이 된다면, 인간은 무슨 짓까지 할 수 있을까. 단순히 투자를 통해 부를 이루는 것에서 그칠 수 있을까. 살인, 강간, 방화와 같은 범죄의 허들이 점차로 낮아져 인간성을 상실한 무언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되돌릴 수 없기에 인간은 고민하고, 후회하고, 학습하며, 사고한다. 최선을 찾고 후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되돌릴 수 있다면 고민도, 후회도 없다. 그냥 해보고 아니면 다시 하면 된다. 이 과정 속에서 마모되는 인간성은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간절하게 바꾸고 싶은 과거의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수한 회귀를 감당할 만큼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원대하지 않다면, 평범한 소시민인 나에게 회귀는 그렇게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닌것으로 결론.


4. 기억을 다 제거하고, 과거로 회귀하는데, 한마디를 남길 수 있다면. "비트코인 풀 매수"를 남길까. 아니, 진입가와 익절가, 손절가를 함께 남겼더라도 일반적인 멘탈로 저정도의 수익률을 버텨낼 수 없다.

종목 말고 태도를 남기려 하지 않을까.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이건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해줄 조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당연하게도 실행하기 힘든 정론.


이빨만 털지말고 행동하고, 정신승리 하지말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힘들겠지만 안주하지 말고, 항상 갈망하며 최선에 가까운 무언가를 조금씩 해내고, 후회 없이 보낸 하루를 여러일 쌓아 가다 보면, 그렇게 존버 하다 보면, 볕 들 날이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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