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20대, 오늘은 30대
1. 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난 서른이 되었다. 별 감흥은 없다. 사실 1.1을 기점으로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것부터 동의할 수 없다. 태어난 날을 기점으로 카운팅이 들어가는 게 훨씬 합리적이지 않나. 2019년 12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는 2일을 살았을 뿐인데 2살이 되어버리는 게 맞는건가.
2.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신이 상상하던 서른과 현재 모습 간의 괴리가 너무나 커서 복잡한 심경이라고 말한다. 서른이면 결혼을 당연히 할 줄 알았다던 친구도, 서른이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줄 알았다던 친구도, 서른이면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을 줄 알았다던 친구도 있었다. 본인들의 상상했던 서른과 지금은 큰 차이가 있었고, 이 차이는 이제까지의 삶의 방향이 잘못된 것만 같은 부정적인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3. 이러한 종류의 괴리는 평생을 가져가야 할 숙제이다. 우리는 서른이 되어보지 못한 채 막연히 상상했기에, 실제 그 상황이 되었을 때 현실과의 갭차이는 당연하다. 완벽한 예측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갭차이는 고등학생때 생각했던 대학생과 실제의 대학생, 이병때와 병장, 새내기시절과 졸업생의 것과 비슷하고 모두가 겪어온 종류의 것이다. 상상은 언제나 현실을 한두 걸음 앞서기에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 절망하거나, 이제까지의 삶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늘까지 살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또한 하루 사이에 삶이 뒤바뀔 만큼 큰일이 일어나는 게 흔하진 않다. 그렇기에 스물아홉의 12월31일과 서른의 1월1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기 힘들다. 1.1에 서른이 되었다고 복잡한 심경을 가질 것이었으면 29살 12월에서부터 가졌어야 하는 게 합리적이고, 이런식으로 하루하루 땡기다 보면 오늘 느끼는 괴리감은 한참 전에 느꼈어야 하는 게 맞다. 오늘에야와서 실망하는 건 너무 늦다. 하루만에 그 괴리감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다면 남은 서른살이 존재하기에 아직은 실망하기에 이르고, 오늘까지 상상 속 서른을 떠올리지 못하다 이제 떠올려 실망하는 거라면 조만간 또 까먹을 거다. 신경 쓸 필요 없다.
4. 20대는 다사다난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30대와는 비할 수는 없겠지. 이립, 이제 겨우 가치관이 바로 섰다. 아등바등 바로 서기 위한 여정이 20대였다면 간신히 세운 두 발로 세상을 걸어 나가야 하는 게 30대 일거다. 분명히 더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은 각자 저마다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이는 개인의 생에 안에서도 변함없다. 너의 십자가가 가벼워 보인다고 내 것과 바꿀 수 없듯, 20대의 것이 가벼워 보인다고 지금의 내 것과 바꿀 수 없다. 너도, 나도, 모두가 힘들고 그중에서 본인이 최고로 힘들다. 내 짐만 유별나게 무겁다고 불평하거나 더 이상은 못 할 것 같다고 징징거려도 소용없다. 이제까지 잘 해왔으니까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고 가는거다.
5. 오늘과 같은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 삶이란 거대한 여정을 이뤄낼 것이다. 오늘처럼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어느새 서른하나가, 서른둘이 될 것이고 그간 쌓아온 삶의 관성은 지금과 비슷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줄 것이다. 항상 겸손하고 겸허하게,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순간을 행복하게 하루를 살아내며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20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