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

하고 싶은 게 없다.

by 동칸

1.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많은 흥미를 가졌던 때가 있었다. 거창한 건 아니었다. 방에 칩거해 미국 드라마를 정주행하거나, 알라딘에서 특정 작가의 책을 모두 구입해 집필된 순서대로 읽거나, 무전여행을 떠나거나 캠핑을 다녔다. 글을 잘 쓰고 싶어 김훈의 책을 필사도 해 보았고, 글씨를 잘 쓰고 싶어 손글씨 교정 책을 사서 무작정 따라쓰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시도들은 작심삼일이었지만 하고 싶었던 것들은 무궁무진했기에 심심하거나 지루할 틈이 없었다.


뭔가를 전문적으로 배워보기엔 금전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였기에 언젠간 내가 돈을 벌게 된다면 이러한 것들을 해 보아야지, 나름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였다. 제일 하고 싶었던 건 목공이었다. 나무를 대패로 갈고, 톱으로 썰고, 못질을 통해 옷장이나 침대등 가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PT도 배워보고 싶었고, 페러글라이딩을 배워서 하늘을 날아보고도 싶었다. 스토리 텔링 수업도 들어보고 싶었고, mma같은 격투기도 배워보고 싶었다.


2. 공부 빼고는 뭐든 다 재밌었을 시기여서 그랬는가, 막상 돈을 벌게 되니 퇴근 후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초반에는 퇴근 후 쓰러지듯 잠에 빠졌고, 업무공부와 승진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3년이 눈 깜짝할 새 흘렀다. 퇴근 후 조금의 여유를 가진 지금, 이제는 하고 싶은 게 사라졌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건 귀찮고 피곤하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니 평일엔 쉬고 싶고, 주말엔 친구들을 만나거나 밀린 잠을 자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의 근본적인 원인은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싶지가 않다는 것이다. 취업하기 전 가졌던 무수한 욕망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냥 누워서 영화나 보고 책이나 읽으면서 종일 뒹굴고만 싶은, 쇼파 위에서 갑자칩이나 주워 먹는 인간이 어느샌가 되어버렸다.


3. “일을 한다.”라는 문장은 굉장히 마법적인 문장으로 이외에는 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쓸만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모든 것을 자본으로 치환하는 시대 속에서 노동을 통해 자본을 획득하고, 획득한 자본으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소비하는 것만으로 사람이 할 도리를 다한 것처럼 느껴진다. 일이나 열심히 해서 돈이나 잘 벌면 그걸로 충분한 것만 같은 세상이다.


마르크스는 경철수고에서 인간이 어떻게 도구로 전락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인간이 짐승과 구분되는 점은 짐승은 본능에 의해 필요한 것만을 생산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육체적 본능과는 자유로이 생산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대상적 세계의 가공 속에서 자신을 유적 존재로 증명하는데 소외된 노동은 이 관계를 전도시켜 생산 활동을 단순히 자신의 생존을 위한 활동으로 전락시켜버린다.


나의 유적 본질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존을 위해서 노동을 하고 있고 이는 노동에 나의 육체적 생존 외에는 다른 어떠한 것도 개입되어있지 않음을 뜻한다. 노동은 나의 신체와 외부의 환경뿐만 아니라 정신적, 인간적 본질도 소외시켰으며 나를 도구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4. 매몰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미 하반신은 묻혀버린 게 아닐까. 삶의 저변이 현격히 축소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도 사그라들었으며,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날로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오로지 경주만을 위해 거세를 해버린 거세마처럼 나 역시 다른 욕구들은 모두 거세되고 그저 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두렵다. 노동에 종속되어 노예처럼 살아감에도 나를 구속하는 족쇄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 한 채 쇼파 위에서 갑자칩이나 퍼먹으며 평생을 살아갈까 두렵다.


2019.12.30

작가의 이전글부정적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