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이어도 괜찮아.
1. 나는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인 사람이다.
나라는 인간은 물이 절반 찬 컵을 보고 반밖에 없음에 불만을 표하고, 나머지 반절을 채우지 못한 나의 부족함을 자책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체제와 시대 따위에서 찾으며 자기 위안과 정신승리를 시도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물을 반절만 먹다가 해소되지 못한 목마름에 고통스러워하다 죽을 게 분명하다고 자포자기해버리는 부정적인 사람이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부정적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파국화’라고 하는데 부정적 사건이 비합리적으로 과장되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는 인지 왜곡 현상이라 한다.
파국화로 상담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세상을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으로 나눈다면 나는 분명히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5단계로 나눈다고 해도 감히 제일 밑 등급을 차지할 것이라 자부한다.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최악의 상황을 그리고 있었기에 생각보다 충격을 덜 받는다든지, 이대로라면 정말로 끝일 것 같아 생존을 위한 노력을 죽기 살기로 한다든지, 좋은 일이 생겨도 내가 이럴 리 없다고 항상 겸손하게 살 수 있다든지.. 등 빛과 그림자는 한 방향에 존재할 수 없듯 부정적인 스탠스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2. 사실 고를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살고 싶다. 비타민처럼 옆에만 있어도 기운을 뿜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 마음을 주지 않고, 실망하는 게 두려워 기대조차 하지 않음을 냉정한 것으로, 시니컬한 것으로 포장하며 평정심을 가지고 있는 척하고 염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병신같은 걸 모르는 건 아닌데 이는 최소한의 방어기제인 듯하여 이미 몸에 배여 생을 함께해와 이젠 어떻게 할 수도 없다.
타고난 성향이다. 좋은 피지컬과 멋진 비쥬얼을 가지고 싶고, 암기력과 이해력을 두루 갖춘 고성능의 뇌를 가지고 싶지만 타고난 것이 그렇지 못했고 이는 불만을 가진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성향 역시 그렇다. 세상의 밝은 면을 찾아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건 멋진 피지컬과 좋은 뇌성능보다 훨씬 더 축복받은 기프트다. 그들이 아무리 부러워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를 어쩌려고 할 때 비극이 시작된다.
3. 부정적인 사람이 좋다. 학연과 지연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는 서로가 같은 환경을 공유했기에 공감이 생기고 마음이 더 가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나와 유사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동질감을 느낀다.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갈 필요도, 서로의 상처를 내세우며 본인이 더 아프다 경쟁할 필요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일은 없을 거다. 서로가 가면극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더라도 가면을 들춰내 상처투성이의 내면을 보여줄 일은 없을거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고, 바라만 볼 뿐이다. 그렇기에 더욱 위로되고, 위안이 된다. 이렇게 답답하고 칙칙한 세계에 혼자만 있는 건 아니구나. 너도 여기에 있구나. 평생을 모르는체하고 살아갈지라도 카라반의 낙타마냥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많은 힘이 되어주는구나.
4. 부정적이지만 최악은 생각만큼 흔한 게 아니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중간중간에 기쁜 일도 있을 것이고 한 번씩 행복할 때도 있을 거다. 그런 순간들을 추억 삼고, 다가올 순간들을 기대하며 하루를 버티며 살아갈 것이다. 시간이 흘러 짬이 쌓이면 어설프게 아프지 않은 척하지 않아도 세월이 쌓아 올린 굳은살이 고통을 경감시켜 주겠지. 이제는 더 이상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는 확신이 들 때쯤 나도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나도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019.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