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런가 싶다.

다들 이래 사는가

by 동칸

1. 끊임없이 무언가를 했다.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에 선택이라기 보다는 의무에 가까웠다. 공부를 했고, 운동을 했고, 책을 읽었으며, 사유를 했다. 삶은 알차게 살아야 한다고 한번 사는 생애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관에 들어갈 때 분명히 후회를 할거라고 생각하며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최선은 가능한 범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했기에 최선이다. 내가 가진 신체와 정신의 최대치를 발휘해야 가능한 것이 최선이고 그렇기에 최선은 최선이라 불리는 것이다.

2. 강박이었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지만 타고난 재능은 없었고, 바라는 이상은 높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방정식에서 최댓값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투입량을 늘리는 방법밖에는 몰랐기에 시간을 투자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노는 시간을 줄이고, 핸드폰 보는 시간을 줄이며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발악했다. 그렇게 발악하는 내 모습이 뿌듯했고, 노력의 결실을 차치하고서도 과정 자체에서 가지는 만족감에 흐뭇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위안했다. 정체된 건 아니라고, 퇴보하고 있지는 않다고. 적어도 나아가고 있다고

3. 승진시험에 합격하고 몇 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업무도 그럭저럭 따라가고 있고 주짓수도 몇 번의 승급을 했으며 체지방률과 근육량 또한 평균 이상으로 건강에도 이상이 없다. 나쁘지 않은 직장에서 또래보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오늘의 생존에 대한 큰 걱정 없이 하루를 무난하고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는 나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불평하거나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어 보인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던가. 가장 행복한 사람은 현재 상황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나쁘지 않음은 분명히 알고 있고,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끼며 만족할 때도 있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미칠듯한 감정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 자연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밀려 들어오는 항거할 수 없는 마이너한 감정 앞에 설 때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웅크리고 이 재해가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다. 나쁘지 않다고 거듭거듭 말하며 나도 행복할 수 있다고, 살아갈 수 있다고, 쓸모있는 인간이라고.

4. 닥쳐오는 마이너한 감정의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그럼에도 버텨야 하는 이유와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버텨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놓아버리고 다 던져버릴 용기는 없는 소인배이기에 그런 순간에도 버텨낼 수 있을거다. 어째저째 버텨낼 수는 있을 것이고, 이렇게 살아갈 수는 있을 거다. 이렇게 ‘버티며 살아내는 삶’과 ‘행복’이라는 두 단어는 과연 양립할 수 있을까.

5.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거고, 행복하게 사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 나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며 아등바등하는 게 정답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맘 편히 닥쳐온 모든 것에 그런가 보다…. 순응하고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아파하고, 흔들리고 비틀거리며, 그럼에도 나아가는 게 원래 이런가 싶다. 다들 이렇게 사는 것 같아서 좀 그렇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닌데 그냥 좀 그렇다.


6. 원래 이런가 싶다. 그래서 좀 그렇다.


2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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