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짐승에게 물려 죽을 것을 두려워하고, 강한 자에게 맞아 죽을 것을 두려워하며 만인과 투쟁하다 이게 될 일이 아니라고 느낀 개인은 집단에게 본인의 권력을 일부 양도하고 안전을 보장받는 계약을 맺음으로써 사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압도적 힘을 가진 절대왕정이 통치해야 하는지, 분립하여야 하는지, 다수결이 옳은지에 대해 홉스와 로크, 루소 등 여러 사상가의 주장은 차치하고 사회의 시작은 계약을 통한 권력 이양이었다. 시작은 단순했을 것이다. 남을 이유 없이 죽이지 말자. 남의 것을 이유 없이 빼앗지 말자. 아무리 니가 싸움을 잘해도 한 손이 열손을 못 당하니 너 역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 단군의 8조법과 비슷하게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렀을 것이다.
개인이 조금씩 양도한 권력의 총체인 사회는 여러 규범과 사고의 양식을 가지게 되고 이는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억압하는 폭력으로 이용된다. ‘법’이란 규범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형벌’을 내린다. 무엇이 죄이고, 어느 정도의 형벌이 적당 한 지에 대한 합의는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사회의 안녕을 꾀하기 위해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규범 중 크리티컬 한 것들에 대해 강제력을 부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덜 크리티컬 한 것들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 강제력을 행사하는가.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헤게모니는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인간을 이단으로 규정, 배제함으로써 우리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인류가 지향해야 할 성공적인 인간상의 규준을 세우고, 그렇지 못한 이들을 실패한 인간으로 낙오시킴으로써 우리들의 행동과 사고를 강제한다. 4년제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입사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고,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 친구와 신의를 지키고, 연인과 사랑하고, 신념은 올곧으며, 인생은 의미 있고, 삶은 행복해야만, 그래야만 한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면 안 되는 것과 비슷한 논리로, 우리는 그래야만 한다.
보편은 자신이 보편이라 주장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이성애자는 본인이 이성애자임을 정당화할 필요도 납득시킬 필요도 없다. 오직 소수성애자만이 본인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본인의 위치를 납득시키기 위해 소리 지른다. 사회의 대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게 드는 순간, 고독하고 지난한 투쟁이 시작된다.
까뮈는 이방인에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사회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던 뫼르소는 아랍인에게 4발의 총알을 박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본인의 신념을 위해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죽이고, 죄책감에 시달리다 교도소에 수감된다. 인간실격에서 타인의 위선을 어린 나이에 파악해버린 요조는 익살이라는 거짓 가면을 통해 사회로의 편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인간이란 자격을 포기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신의 부재를 외치며 모든 시대정신을 부정할 수 있는 초인이 정말 존재할 수 있을까. 가능성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확실한 건 나는 아니다. 내가 의식적으로 동의하거나 합의한 적 없는 여러 가지 규범들의 강제와 폭력 앞에서 나는 절대적으로 무력할 것이다. 내 모든 사유의 근본적인 기반, 무의식의 기저는 시작부터 점령되어 있었기에 이후 파생되는 모든 줄기의 방향과 형태는 점령자의 그것과 유사한 것은 필연이다.
어떠한 기준에 부합하고자 방향성 없는 시간과 노력의 투입을 지속하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주위의 시선에 휘둘리며, 병신같은 건 인지하고 있지만 어찌할 방법은 찾지 못한 채 거대한 관성에 의해 멈추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