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라 말하고 예쁘다고 박수쳤던 순간의 사진들

"마음을 촬영하는 사진"

by 동경

아프라 말하고 예쁘다고 박수쳤던 순간

그 누구라도 행복과 고통이라는 간극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요?


타인의 시선에 비친 행복은 늘

반짝이는 단면으로만 남습니다.
마치 햇빛이 가장 잘 닿는 면만을

비추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그 빛의 방향을 조금만 바꾸면,
그 아래에는 누군가가 감내한 희생과 포기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그림자를 보지 않습니다.
혹은, 보지 않기로 선택합니다.


사진이 그렇습니다. 빛이 주는 명암의 단면 같은..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 흐르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후회와 행복을 같은 자리에 두고
몇 번이고 되짚어 봅니다.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선택했던 순간이

어느 날 미래가 되어 도착했을 때,
그 결과가 타인의 눈에 ‘행복’으로만 보인다면,

그 장면은 얼마나 덧없고 또 얼마나 쓸쓸할까요.


결국 삶의 기쁨과 아픔은

각자가 감당해야 할 무게일 뿐,

세상의 언어로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
마음속 풍경 같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프라 말하고 예쁘다고 박수쳤어요"


제가 찍었던 사진이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따끔거리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칭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말이 사진 위에 내려앉는 순간,
사진 속에 남아 있던 시간과 감정의 숨결들이

의도치 않게 덮여 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쁘다’라는 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 역시 한때는 그 말이 사진가에게 '가장 좋은 칭찬'이라고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진심을 전달하는 언어의 형태"

사진작가인 저는 언어가 반드시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말보다 시선이, 설명보다 침묵이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감출 수 없는 반응, 무의식적으로 굳어지는 눈빛,

잠시 늦춰지는 호흡 같은 것들 말이죠.

‘사랑한다’는 말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가볍게 꺼낸 말과 오랜 시간 스스로를 검증한 뒤 겨우 도착한 말은 같은 문장이라도 전혀 다른 온도로 상대에게 닿습니다.


저는 그런 진실한 언어 중 하나가 ‘눈’이라고 믿어요.

진심과 간절함, 말로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은 언제나 먼저 눈에 머물고, 사진은 그 순간을 붙잡아 두는 일에 가장 가까운 매체라고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상대의 감정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게 됩니다.


그 사람이 겪어온 기억과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그 감정이 떠오르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그때 마주한 눈은 온전히 제게로 건너옵니다.





"상대의 감정이 불러온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할 때"

물론 저는 그들의 아픔을 끝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제가 느끼는 이 감정보다 훨씬 더 깊은 무게를 그들은 이미 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그 사실조차 사진을 찍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진심이 사진 속에 남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삶과 시간이 사진 안에 쌓일수록,
어느 순간부터 셔터를 누른 뒤의 마음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SNS 속 사진들은 수많은 ‘좋아요’와 ‘예쁘다’는 말을 받았지만, 그 말이 닿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되돌려 보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정말 그렇게 불러도 되는 걸까. 그 질문은 결국 저 자신을 향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진을 찍고 있는가?

상업 사진가로서 현실적인 목적은 분명했지만,
‘Portrait’만큼은 삶의 본질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묻는 일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가치가 대화를 통해 닿는 순간, 그때 생기는 동질감과 연민이 사진이라는 매개를 통해 신뢰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사진은 충분한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진심으로 바라본 시선은 결국 사진 안에 정직하게 남는다고, 저는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마음을 담는 사진, 어떻게 생각하세요?



- 사진을 쉬게 된 이후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