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 무서운 이유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보며 어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읍니다.
"저 녀석 웃는 것 좀 봐. 세상에, 걷는 게 저렇게나 신이 날까?"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아이가 마냥 '신이 났다'고만 생각하는 걸까요?
사실 우리 중 누구도 그 시절의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어른이 된 지금,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상황들이 즐겁고 행복한 순간뿐이기에, 아이의 표정 또한 그런 감정일 것이라 짐작하며 나 자신을 투영하는 거겠지요.
어린 시절, 저는 자전거를 타고 빗길을 가르는 자동차 드리프트를 흉내 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비가 갠 뒤 물웅덩이만 보이면, 그곳은 저만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페달을 힘껏 밟아 속도를 높이다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미끄러지듯 물을 튀기는 그 짜릿함이란.
덕분에 제 무릎엔 피딱지가 떨어질 날이 없었습니다. 매일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무서운 줄 모르고 그 놀이에 몰두했고, 그런 저를 보며 어른들은 혀를 차곤 하셨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넘어지거나 바닥을 구르는 아픔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직 '어떻게 하면 이 멋진 기술을 성공해 낼까?' 하는 목표에만 온 신경을 쏟았으니까요. 그리고 마침내 넘어지지 않고 그 기술을 깔끔하게 성공해 냈을 때, 저 역시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른이 되고 지갑이라는 물건을 더는 쓰지 않게 될 때까지, 제 지갑 속엔 늘 낡은 어린 시절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첫걸음마를 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제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죠.
사진 속의 나는 단순히 즐거워서 웃었던 걸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살 때의 기억은 없지만, 없는 기억을 되짚어 보건대 그 웃음은 분명 이런 의미였을 겁니다.
"어...? 이게 되네? 뭐야! 이게 정말 되네?!"
엄마 아빠가 잡아주던 손을 놓는 순간, 다리에 힘이 없는 나는 본능적으로 넘어질 거라 직감했을 겁니다. 그런데 손을 놓았음에도 한 발, 두 발 내딛게 되었을 때, 어쩌면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삶에 대한 '성공'을 맛보았던 건 아닐까요. 그건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스스로 해냈다는 전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때부터 넘어지는 것에 익숙했는지도 모릅니다. 걸음마를 배우고 뜀박질을 익히며, 성장을 위해 당연히 거쳐야 할 치열한 과정으로 넘어짐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겠죠.
그런데 지금은, 당연히 무섭습니다. 그리고 두렵습니다. 넘어진다는 것이.
무릎에 앉은 상처의 딱지가 떨어질 때쯤이면 아무렇지 않게 다시 달리던 그 시절에 비하면, 어른이 된 지금의 넘어짐은 왜 이토록 거대하고 무거운 일이 되어버린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