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일 메이비-너와 나의 암호 말
1.
책이 왔다. 양준일 첫 책이 왔다. 인터넷 서점 네 군데에서 예판으로 판매된 부수는 약 3만 부 정도 된다고 하니, 출판시장의 다크호스 맞다. 예판 독자들이 지인들에게 한 권씩만 더 권하거나 선물하면 6만 부, 라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만들어진다.
책을 세 번 읽었다.
단숨에 쉬지도 않고 한 번, 연필로 메모하면서 한 번, 북마크로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한 번, 세 번을 읽었다. 미쳤다.
책은 90개의 단어로 나열된 목차로 시작되고, 1969년부터 2020년까지의 양준일 일대기(?)가 토막글로 잘 정리되었다. 어디에서 태어났고, 언제 어느 학교를 다녔고, 언제 데뷔했고, 1년 연애해서 결혼했고, 영어공부방을 일산에서 했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미국에서 ‘하루하루의 노동의 소중했던 순간(양준일, 21p)’, 슈가맨에 우연히 출연했고, 그 이후 팬미팅만 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또 우연찮게 기회가 되어 한국에 정착할 준비를 하는 것. 여기까지가 그동안 알고 있던 양준일이다.
그동안 덕질을 한 팬덤들이 책을 읽으면 많이 새로울 게 없는 것들의 문장이지만, 소장각으로 들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어도 행복할 떡밥이다. 거기에 눈부신 사진은 그야말로 정말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할 것들이다.
그럼, 팬덤화 되지 않은 일반 독자들이 읽는다면? 읽을 만하다. 읽기 전에 사전학습용으로 한국일보 기사, 하나를 미리 읽는 수고를 한다면, 이 책은 내 안에서 에너지를 품어 줄 책일 것이다.
2.
한국일보 “[삶도] 김지은, “난 핵폐기물” 극단까지 간 양준일을 다시 빛나게 한 힘>“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는데, 정말 눈물 쏟게 했다. 단순히 미국에서 재정적으로 힘들었구나, 는 아니다. 이민을 간 순간부터 양준일의 인생은 본인과 상관없이 꼬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양준일 메이비 MAYBE-너와 나의 암호 말>, 이 책은 양준일에 대한 밑밥을 조금 알고 읽으면 나와 나의 암호를 풀기가 좀 쉽겠다. 해독이 조금 더 빠를 것이다.
한국일보 “[삶도] 김지은, “난 핵폐기물” 극단까지 간 양준일을 다시 빛나게 한 힘>"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2002130928714682?did=FA&dtype=&dtypecode=&prnewsid=&backAd=1
3.
열 살 나이에 부모와 같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의사결정권이 오롯이 부모에게 있던 그 시절에 이민을 간 것이고. 영어가 초기에 서툴렀고, 한국말도 또 완전히 정착(사유의 폭)이 안 된 상태인 어린 시절이니 이래저래 자신의 정체성 혼란이 올 수 있었겠다. 양준일은 이 부분을 ‘바이링구얼(bilingual)'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해 두었다.
230.231 p- BILINGUAL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말하는 바이링구얼(bilingual)로 살면서 느끼는
장점은 영어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우리말로, 우리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우리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단점은 우리말도 영어도 깊이 못한다는 것.
그래서 내 생각을 간단하고 쉬운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양준일 메이비-너와 나의 암호 말, 모비딕 북스, 2020
영어와 우리말을 둘 다 하니 그거 행운이겠다, 할 수도 있으나 내 마음에는 짠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 깊이들의 한계에서 조금은 우울도 했겠다, 싶더라고. 그럼에도 90년대 쓴 가사를 보면 충분히 표현했다 싶으나, 그 충족감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 양국의 언어를 쓰는 것을 마냥 부러워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208p- 목소리
하현우 씨가 <나는 가수다>에서
씨스타의 '나 혼자'를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다. 내게 저런 목소리가
있다면 나도 저렇게 표현했겠구나, 생각했다.
국카스텐의 하현우 목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저런 무대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소망으로 읽혔다. 이렇게 해독이 되니 울컥하더라.
240p- 용서
늘 순간순간 용서할 수 있다면 나중에
쌓아 놓고 한꺼번에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순간순간에 용서할 수 있다면, 한꺼번에 용서할 거리 자체가 없는 거잖아. 그렇게 매번 용서를 떨어내려면 내 안의 내공이 얼마나 깊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냐고!!! 가슴이 아픈 문장들이다.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삶의 장면, 장면들을 목격하고 있다.
양준일,아이스크림 -양준일 메이비 너와나의 암호말 -모비딕북스
각자마다 인생의 암호들을 푸는 방법은 다들 다르겠지만 삶이 문득문득 마침표도 없이, 뭔가 턱턱 막힌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책의 어느 한 모퉁이를 펼쳐서 쳐다보고 있으면 걱정인형 하나가 내 옆에 위로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 기운 내 보자, 그래 버티어 보자, 그런 신호를 준다. 그게 요즘의 양준일이 주는 힘인데, 글자로 인쇄되어서 그 힘이 배가 된 느낌이다. 그래, 이런 에너지 나도 같이 누려볼까, 나에게도 우두두 힘을 보내 주겠지, 하는 내 편. 그거 책을 통해서 느낀다.
김보하 작가가 찍은 사진이 책 속에서 참 영롱했다. 빛과 선이 적절히 받쳐주는 사진 속에서 사진작가와 글쓴이의 교집합이 읽혔다. 빛이 새롭게 들어간 느낌, 그 안에 눈이 웃는다.
북이오 프리즘에 정기칼럼으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