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환대, 양준일
바야흐로 덕질은 익어만 가는가?
[양준일 덕질] 절대적 환대, 양준일
-바야흐로 덕질은 익어만 가는가?
EBS 라디오의 윤고은 북카페에 양준일이 베스트셀러 작가로 출연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방송을 못 들었다. 일단 양준일의 책을 세 번 봤더니 그 행간을 거의 외우는 것 같고, 그가 나온 방송이나 유튜브 등등 양준일 이름 들어간 것은 거의 다 본 듯하니, 이제는 사골이 집에서 뭉근하게 끓여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에 아무리 좋은 사골도 매 끼니마다 그것만 먹는다 하면 그것, 사실 힘들잖아.
그래도 내가 명색이 덕질하고 있는 덕후인데 못 들은 방송이 내내 궁금하더라고. 그래서 양준일 오피셜 유튜브 들어갔더니 진행자 목소리가 안 들려. 아마도 스튜디오 안에서 셀캠으로 본인 위주로 촬영했는 모양이야. 방송국에서 다시 듣기는 하루 지나야 올려주는 모양이야. 아고.
이미지 출처 / 유튜브, ForYou 화면 캡처, EBS 윤고은 북카페 출연, 퇴근길. 팬 직캠 https://www.youtube.com/watch?v=z4NGtJmYwLU그렇게 본방을 의도적으로 놓치고, 다시 듣기도 제대로 못 듣고 유튜브 배회하다가 팬들이 올려 둔 출퇴근길 영상을 보게 되었다. 와 진짜 환하게 웃고 있다. 오랜만에 방송국 나들이였고, 자신에게 아낌없이 박수 보내는 팬들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선글라스 때문에 얼굴이 잘 안 보인다는 요청에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주는 그 모습에서 세상을 다 가진듯한 모습을 봤다. 뭐 그런 맛에 연예인 되는 것이기는 하지.
웃는 사진을 보는데, 나는 '절대적 환대'가 생각났다. 우리는 일상에서 절대적 환대를 얼마나 받고 있고, 절대적 환대를 얼마나 타인에게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 절대적이라는 단어에는 사실,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대로 환대하는 것인데, 정말 그렇게들 하고 있을까.
'사람, 장소, 환대'를 쓴 김현경은 절대적 환대를 한 챕터로 나누어서 이렇게 써 두었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인정한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은 그를 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
환대란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며, 이러한 인정은 그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몸짓과 말을 통해 표현된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 지성사, 2015 초판
양준일 라디오 방송 본을 들으려다 결국 나는 예전에 읽은 책 한 권을 꺼내서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팬덤 문화에 대한 생각을 또 한다. 팬덤의 가치는 아티스트에게 있을까, 덕후들에게 있을까. 아티스트가 행복하게 뭐든 우쭈쭈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내가 덕질하면서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사실은 양준일 덕질에 대한 물음표를 조금씩 하게 된다는 것이지. 저 사람이 저랬으면 좋겠고, 저 사람이 이랬으면 좋겠고, 노래는 이런 연습을 하면 좋겠고, 토크에서는 말 수를 조금 줄였으면 좋겠고, 패션에서는 20대의 엣 모습이 아닌 50대의 자기 모습으로 우뚝 서 있으면 좋겠고, 음반은 이 정도 수준으로 나오면 좋겠고, 등. 참 많은 요구 사항과 기대치가 둥둥 떠 다니고 있다. 소위 팬덤의 안과 밖을 비교하는 것, 그게 맞는지 틀렸는지도 모르겠다.
절대적 환대를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티스트 입장에서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만 안고 가는 것이 맞는지,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것까지 챙기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절대적 지지를 하는 찐팬들만 남아있으면 어쩔 거고, 이래저래 조언하는 팬들이 떠나가면 또 어쩔 건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고 있다. 내가 그에게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덕질을 통하여 무엇을 애당초 얻으려고 했을까.
사는 것은 참 많은 전쟁을 동반한다. 그 전쟁 안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의 에너지는 어쩌면 '절대적 환대'가 주는 충만감이 아닐까. 오롯하게, 지속적으로 절대적 환대를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상대의 행동반경이 아니라, 내 안의 의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절대적 환대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우정의 조건은 절대적 환대이다"
라고 한 김현경의 글이 다시 머릿속에 남는다.
그럼에도, 뭔가 이야기를 아구아구 하고 싶고, 지적질하고 싶어 지는 심리 저변에도 어쩌면 '절대적 환대'가 살아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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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북이오 정기 기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