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용기,
가을 관계학, 그리고 나는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를 듣는데 헉 소롬이 돋았다. 이게 오늘따라 왜 이리 슬프냐고 페북 댓글에 달았더니, 이게 나이 들어선 감성의 목소리로 녹음해서 그렇다고 하더라. 그래서 들여다보니 최백호 40주년 기념 콘서트를 했다고 언론은 촘촘하게 보도했더라. 불혹이라는, 콘서트 이름을 달고서. 세월이 주는 목소리의 힘은 생녹음의 거칠음도 다 녹여낸다 싶다. 이 남자 참 멋지게 늙어가는구나.
최백호의 음악을 밤새 들었다면, 아이유의 개여울은 오늘 아침에 훅 듣게 되었다. 도대체 이 친구 몇 살이었더라. 그래 스물 다섯이지. 이 나이에 이런 감성의 목소리를 낸다면 이건 괴물이지. 그것도 피아노 반주를 최소한 줄이고 그저 자신의 낙낙한 목소리로 사람을 잡고 있다. 이게 정미조님의 리메이크곡인데 그녀는 몇 살에 불렀나. 모르겠네. '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첫 소절부터 그냥 헉하게 만든다. 아이유가 최백호의 나이가 되면 또 어떤 울림으로 사람을 잡을까.
최백호의 노래가 그랬고, 아이유의 노래가 그랬다. SNS에 각각의 사연을 담아서 올려둔 음악들, 타인의 선곡이다. 타인의 선곡이 가끔, 혹은 아주 크게 사람을 들었다 났다 한다. 그 타인이 좋아하는 사람, 이라는 가정이 들어가면 그건 더 주검이다. 이유없다. 그냥 그(그녀)가 선택한 음악이라는 것 하나만 깔리면 그 음악은 나의 애정곡이 되는 것이다. 하루종일 그 음악에 절절매고, 듣고 또 듣고는 서성거리고 헥헥거리며 애써 교집합 하나 만든다. 그리고는 인위적인 그 공감에 만세삼창을 한다. 그런 경험들 있는가?
음악은 모든 것을 담은 종합예술이라고 이야기하는 말 한마디에 쓰러지는 감정을 품고, 선곡에 박수치고, 못다 튼 스피커에 웅웅거리고, 귀에 꽂아주는 헤드셋이 심장을 관통하는 청진기라 착각되어 그 음악을 도저히 같이 들을 수 없어서, 이 선곡 별로라며 그 자리를 애써 박차고 나와서는 하늘같은 후회를 하고, 그리고는 그런 음악적 공감 할 수 있는 자리 한 번 더 만들면 좋겠다고 호시탐탐 기회를 기다리고, 서너시간은 충분히 음악으로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다고 들뜬 목소리를 들려주고, 그 장단에 기꺼이 맞추어 주는 주말 오후의 그 햇살들이 아련한 것들, 그게 뭘까. 그러면서 서성거리고 서걱거리는 것들, 그게 뭐냐고?
요즘 '관계' 라는 단어에 대한 의미를 많이 생각한다. 언젠가 내 선배가 일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어야 그 관계가 건강하고 올곧다, 라고 했다. 그 때는 그 말의 의미가 그리 크게 오지 않더니 요즘 그 말의 참뜻이 새록새록하다. 일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으로 남는다? 이게 사실 모든 본질을 다 꿰고 있는 것이지. 좋아해야 하고, 그 좋아함이 선해서 하나의 헤드셋으로 같은 음악 들으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는 것처럼, 눈빛만 마주쳐도 서로 척 할 수 있는 공감처럼, 그렇게 맞아야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서로 분노하는 것이 작아야 일이 일답게 굴러가는 것이거든. 분노의 범주나 크기는 평소 생각의 잣대들이잖아. 그 잣대가 서로 맞으면 뭐든 케세라세라, 되는 것이고. 그게 어긋나면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도 아버지가 눈을 바로 뜰 수 없었던 설상가상이 되는거야. 그래서 일의 궁합이나 사람의 관계에서 내가 많이 주장하는 것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애써 찾아서 맞추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것보다 더 쉬운 것은 상대가 싫어하는 것은 그냥 하지 않는 것이다 싶거든.
일테면 소소한 거짓말 하는 것을 싫어하면 그거 안 하면 되거든. 설사 다른 제 3자가 뭔가 거짓말(크든 작든)했다 치면, 그것에 분노하는 나한테 이해를 하네 못 하네 하는 게 아니지. 자신이 인지했든 못 했든 혹은 방조(무시꿀꺽도 방조야)했든 아니든 그것은 나중 일이고. 화난 사람의 그 분노에 공감해야 하는 것이지.
"나는 몰랐지만 만약에 그랬다면, 정말 속상했겠다, 그런데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그거 이해 못 하겠네"
라고 대응해야지. 이해 안 되는 대상이 명확해야 화가 덜 나는 법이야. 도대체 그런 것에 왜 예민하냐, 그 예민함을 왜 나한테 쏟냐 하면 서걱하지. 왜냐하면 소소한 거짓말은 누구나 싫어하는 테두리들이니까. 그게 그냥 상식이라고 우리는 생각하니까. 그런데 그거 다들 잘 모르고 헷갈려하더라. 그냥 자신만 억울하거든. 몰랐으니 뭐? 그거 참 잔인하잖아. 크든 작든 그런 상황으로 받은 모멸감은 아주 큰데, 그 모멸감 마저 푸대접을 받으면 어떻게 관계가 지속되겠어. 그러면 서로 안 보는게 답이잖아. 안 맞는거야. 일도 같아. 관계가 어긋나는데 일을 일답게 풀겠어.
한 밤중에 후배가 "주소 주세요" 라고 뜽금없는 문자가 왔는데 그 질문에 대전시 어쩌고 저쩌고 써 보냈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소를 훅 준다고 아주 즐거워라 하더라. 뭐 필요하니까 주소를 달라고 했겠지. 그런데 같은 상황으로 "주소 좀 주세요" 라고 어느 모임(급조된 모임)의 총무가 카톡을 보내왔다. 답변은 달랐지. 왜 주소가 필요한대요? 나는 우편물 받을 것도, 택배 받을 것도 없는데요, 라고 하고는 끝내 보내지 않았거든. 그냥 엮이는 거 싫어서. 중요하면 다시 연락하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훅 결정하는 그런 관계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관계들이 위험하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 정도 안목들은 있어야 어른이지. '안목이 운명을 좌우한다' 는 내 좌우명이야. 사람을 보는 눈, 물건을 고르는 눈, 관계를 유지하는 힘들, 그게 모두 안목이잖아.
인복이 많네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세요? 하는데, 그거 곰곰 생각해 보니 경쟁하지 않겠다는 무장해제을 보여주면 가능하던데. 너랑 경쟁하지 않을거야, 너의 좋은 점만 많이 볼거야, 하는 신뢰만 보여주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이더라. 대신 그 반대가 되면 서로 전쟁이고. 그 전쟁안에서 서로 이거 내가 했다, 라고 영역표시를 교묘하게 하면 싸움은 끝이 없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법이다. 인정하지 않으니 억울하고, 억울하니 또 꽥꽥거리고. 그러면 그냥 진퇴양난으로 관계 끝. 일 끝, 이다. 이런 상황 종종 본다.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되는 피곤의 극도를 달리게 된다. 사람도 꼴 보기 싫고, 일은 더 싫고. 그렇게 연결된 고리들 다 끊고 싶거든.
그런데 착각하고 잘 모르는 것은 자신의 능력은 사실 타인이 발굴하는 것인데 혼자서 다 했다고 생각하더라. 아무리 능력이 있다해도, 그거 꽂아 줄 기회의 업무분장을 하지 않으면 그 잘난 능력을 펼칠 수가 없는데 그거 모르니 비극은 탄생되는거야. 그게 진짜 더 슬픈 일이야. 자기는 너무 잘 하는데 그거 못 알아준다고 씩씩거리는데, 그거 판을 만들어야 채워지는 법이잖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도 촉인데, 그 촉을 깡그리 무시하고 내 팔뚝만 굵은 줄 알면, 관계는 사실 어렵더라. 그래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고 하잖아.
마이클잭슨의 음악은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향해 그것은 아니거든요, 라고 말 하지 않고 마이클잭슨의 음악 어떤 부분이 좋았을까, 그거 들여다보면서 밤을 꼴각 넘긴다면 그건 관계의 호신호이다. 사람에게는 정성을 들이는 것, 그거 아무나 못 하는 것이라 그 정성을 사람들은 귀히 여긴다. 열정을 쏟고 작은 것을 귀 담아 듣고는 묵묵히 실행하는 것, 그게 관계의 시작이지. 그렇다고 넘치지는 말고. 넘치면 스토커잖아. 가만가만 조용히 관계를 찾아가는 법, 그게 인복을 받는 방법이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도 해야하지만,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 그게 자유에의 용기이고 힘이지. 그게 더 중요하다고 봐.
깨알 같은 웅얼거림을 받아 줄 사람을 찾아 사랑을 해야 비로소 가을을 느낄까. 최백호의 노래든 아이유의 노래든 그거 무장해제 하고 같이 들어줄 사람을 찾는 것, 그게 관계의 시작이다 하면 위험한거야? 그래야 가을이 하늘하늘 할 것 같아.
가을 관계학안에서 서성거린다. 여전히.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