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럭
다시 커피 예찬, 그리고 사람 예찬
1.
주변의 지인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주는 선물은 커피이다. 외국 나갔다 들어오면서 한 봉지, 갓 볶았다고 한 봉지, 마셔보니 맛이 조금 더 특별나더라 한 봉지, 심지어는 본인 선물 받았지만 드립커피 내려 먹지 않으니 커피 좋아하는 너님이 가지시라, 라며 한 봉지. 더 심지어는 S N S 에 커피 관련 글을 한 토막 썼더니, 후배가 출장길에 사 왔다며 낯선 커피를 집으로 보내오기도 하는 한 봉지. 그런 사연 사연의 봉지, 봉지에서 어제 또 두 봉지의 커피를 선물 받았다. 코스타리카와 엘살바도르 커피를 본인이 방금 볶았다며 4주 긴 과정의 마무리 선물로 주더라. 염치없이 하하호호 하면서 얼른 받았다. 받을 때는 코스타리카와 엘살바도르이네 했는데, 다시 들여다보면서 왜 하필 이 커피 두 봉지인가, 하는 쓸데없는 투정을 불쑥 했다.
엘살바도르와 코스타리카를 6대 4의 비율로 섞은 블렌딩 커피를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 한 사람에게 받은 커피콩 200그램은 얼마나 가슴 뛰게 하던지, 얼마나 설레게 하던지, 그 콩을 끌어안고 한동안 갈지도 못 하고 봉지 안에서 숙성이 더 되기를 기다리는 촌극을 하기도 했고, 커피 맛의 음미보다 마셔서 없어지는 200그램의 분량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아깝고 아까워 동동거렸다. 혼자서 야금야금 모두 마시고는 봉지를 버리지도 못 하고 한동안 오래 보관하기도 했다. 애써 추억 한 자락 만들어 두고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그게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이니 세월은 참 빨리도 흘러간다.
2.
지방 소재의 한 대학에서 소위 취업캠프, 라는 이름으로 11월 한 달 내내 4주, 컨설턴트로 일 했다, 말과 글을 다듬는 역할을 여러 청년들과 하는 소위 자기소개서 피드백과 1분 자기소개 스피치 피드백이다. 짧은 분량에 아이들이 살아온 과정을 녹여내고, 더듬거리는 말을 정리하고 요약하며 아이들 살아온 날들을 같이 들여다보는 일대일 매칭 피드백을 하면서 웃고 울었다. 이제 스무 살 갓 넘은 아이들 인생사에 일상의 평범함도 있지만, 굴곡지어진 삶의 상처들도 있었다. 자신의 삶을 롤러코스터라고 이야기하는 아이, 눈을 마주치며 말을 한 마디로 못 하는 아이, 이미 상실감으로 삶의 주체성을 전혀 인지 못 하는 아이,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인정 못 하는 아이, 입학 성적이 낮은 지방 사립대학을 다닌다는 이유로 그동안 칭찬 한 번 제대로 못 받고 살아온 그 아이들이, 거기에 있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래 어른들이 문제이지, 그 아이들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어서 어른으로 참 많이 미안했다. 주체스럽게도 울컥울컥해서 서로 많이 울었다. 자신이 자신을 귀하게 여겨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법인데, 그런 이야기를 해 주는 어른들도 사실 없었다는 것. 그것도 슬프더라.
준비해 간 커피도구로 드립커피를 내려서 이 친구들에게 주었다. 어찌나 신기해하는지. 커피 드립은 텔레비전에서나 봤지 실제로 내리는 것은 처음 봤다는 아이들, 커피향이 이렇게 좋은지 처음 느낀다는 아이, 갓 내린 커피가 이렇게 맛있는지 정말 제대로 느끼겠다는 아이, 나눠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아이들은 이미 온 우주가 행복이었다. 그깟 드립커피 한 잔이 뭐라고. 이런 상황, 상황이 낯설어서 또 울컥울컥했다. 그래 커피가 그런 것이지. 그래서 나도 엘살바도르와 코스타리카를 섞은 커피 한 봉지를 선물 받고는 온 우주를 다 끌어안은 것 같은 묵은 인연을 애써 만들려고 했고, 그 봉지조차도 버리지 못 하고 몇 년을 보관하며 추억과 기억의 중간에서 오락가락하는 감정 노동자가 되기도 했다. 커피는 욕망이고(가까운 후배가 늘 하는 말을 인용), 커피는 사랑이고, 커피는 존재의 이유를 챙겨주는 그런 도구라는 것, 그 존재가치를 아이들과 나눠 마시며 다시 또 느낀다.
3.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읽고 있고,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무엇인가 나사 빠진 허허한 일상의 연속이라고 자조하는 어느 날들, 우리는 자괴감을 느낀다. 그런 날 우리는 뭘 하면 좀 더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까. 내 경우는 책을 보고,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러가는 소소한 일상으로 나를 위로하지만 대개는 커피 한 잔 마신다. 생산지마다 다른 커피 맛의 그 고유함을 애써 기억 해 내고는 이 커피는, 저 커피는 하면서 오만 허세를 부린다. 이거 덜 볶았네, 이거 너무 볶았네, 이거 섞는 것을 잘 했네, 못 했네 하면서 바디감이 어쩌고, 발런스가 어쩌고 하면서 허세 작렬 모드가 된다. 마치 셀카를 즐기는 아이들의 얼짱 각도를 흉내 내는 것처럼 커피 맛의 얼짱을 찾는다. 그래서 우울하면 신 맛, 피곤하면 초코렛 맛, 더 피곤하면 아주 쓰고 묵직한 맛의 커피를 즐기며 자괴감과 이별하려 애쓴다.
그래, 다시 커피 예찬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한 것도 없이 나이 한 살 더 먹어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바람 불면 바람 불어 또 덜컥 우울증이 올 것 같은 이 겨울날에, 커피 한 잔 또 진하게 마셔보자. 커피가 욕망이라는 그녀는 어떤 커피를 마시며 욕망을 달래고 있을지, 코스타리카와 엘살바도르를 섞은 커피를 선물 한 사람은, 어떤 커피를 또 누구에게 선물하여 설렘하게 하는지 내 맘대로 까짓 거 상상해 보는거다. 사는 거 별거 있나. 상상하고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러면서 나이 먹는거지. 코스타리카와 엘살바도르 6대4가 아닌 반반으로 섞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들 삶에 공식이 어디 있겠어. 그냥 물 흐르듯이 가는 것이지. 커피 예찬, 사람 예찬 하면서 온 우주에 건배, 굿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