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갈아엎기로 했다. 초고를 보내고 분량을 다시 채워 2고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탈고했다. 교정 들어간다고 다시 피드백이 왔는데 이거 색깔이 없다. 저자인 내가 읽어도 내 정서나 철학(뭐 거창하지만)은 없고, 그냥 딱 참고서처럼 죽 나열되어 있다. 그것도 정확한 핵심 없이 딱 초등학교 전과였다.
원래 예정된 출판 일정이 있었고, 원고가 늦게 마무리되기도 했다. 내 글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차마 갈아엎자고는 못 하겠는 것이다. 그런데 출판사 대표님이 내 평소의 색깔이 약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용기를 내어서 갈아엎자고 내가 이야기했다. 대표님 왈 "괜찮겠어요?"라고 묻는다. 그래도 책 한 권의 원고를 다 썼는데 갈아엎고 새로 시작해도 되겠냐고 묻는다. 나도 물었다. 출판 일정에 차질이 생겼는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좋은 원고가 나올 수 있으면 천천히 가요"라고 대답한다. 아마 저자나 출판사 대표나 같은 목표 아닐까. 좋은 원고가 나오면 좋겠다, 하는.
오히려 저자가 갈아엎자, 라는 말을 해 줘서 고맙단다.
일에는 결이라는 것이 있다. 그 결을 챙길 수 있는 파트너가 있음에 든든했고 고마왔다. 애초에 출판사 소개해 준 지인에게도 고맙다고 전화했다. 나랑 딱 맞는 출판사 연결해 주어서. 기다려주고, 다시 틈을 만들어주는 여백을 주는 출판사 대표에게 엎드려 절 하고 싶다. 이렇게 개인의 역량이 아닌 주변의 도움과 그들의 아우라로 조금씩 성장한다. 감사한 일이다.
한결같이 내 목소리를 풀어낼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책에 좀 녹여내고 싶다. 결국 인터뷰하여 현장의 결을 담아야 한다는 것. 내친김에 오늘 한 명 인터뷰했다. 한 명은 거절...ㅎㅎ. 인터뷰 거절당하지 않는 요령도 습득해야 할 듯하다. 글은 생물이다는 것. 그거 녹여내고 싶은데 그 역량이 될지 모르겠다. 활자와 전쟁을 치르며 다시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