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장에서 이름 순서
엄마 장례를 치루었다. 장례를 치루면서 참 여러 생각을 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문화가 뿌리 깊게 내린 대구에서 여성은 철저히 출가외인이었다. 부고장 한 장 쓰는 것도, 전광판에 이름을 알리는 것도 철저한 남성 중심이었다. 이게 맞나 싶은 게.
대구에서 장례식장에 먼저 도착한 동생네가 부고장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전화로 그랬다. 아들, 딸 이렇게 올리지 말라고. 그냥 자연스럽게 태어난 순서대로 이름을 나란히 올리라고. 그게 안 된단다. 우리집은 아들1, 딸2이다. 내가 맏이고 그 아래로 남동생, 여동생이 나란히 있다.
내가 엄마를 20년 모셨다. 그런데도 남자라는 이유로 그것도 여섯 살 아래인데도 맏상주는 내 남동생이란다. 그래서 부고장에는 아들이라 남동생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오고, 그 아래로 딸 이름 둘이 들아간단다. 내가 아니다. 내가 맏이다 했더니 <딸>ㅇㅇㅇ, ㅇㅇㅇ 그 아래 <아들> 000 이렇게 표시되어 왔다. 그냥 딸과 아들 순서를 바꾸어 왔다. 이것도 아니다. 그냥 <자녀> 김향숙, 남동생이름, 여동생 이름 이렇게 나란히 올려라 했다. 이게 안 된단다.
부고장도 사람이 타이핑 쳐서 만든다
컴퓨터로 타이핑 쳐서 부고장 만들고, 그 부고장을 그대로 장례식장 안내판에 올리는데 컴퓨터의 타이핑이 안 된다고요? 했다. 그때야 가능하다고 했다. 남성인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내가 20년 넘게 엄마를 우리집에서 모셨다. 아니 딸이 안 모셨다 해도 딸이 동생보다 위면 당연한 것 아닌가.
사위, 며느리는 나눠서 그렇게 올렸다. 외며느리인 동생처가 그렇게 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손자에서 또 남동생 아들이 친손자라 먼저 올려야 한단다. 초등학교 6학년이다. 아니다라고 했다. 친손자외손자 구분없이 남녀성별 구별없이 손자 모두 태어난 순서대로 이름을 넣으라고 했다.
조문객들 반응
장례식장에 와서 부고 안내판을 보고 눈치챈 분들도 있고, 그냥저냥 넘어간 사람도 있다. 눈치 챈 사람들은 그랬다. 이게 맞다. 실제로 부모 아프면 거의 딸들이 더 많이 수발 들고. 실제로 누나인데 남동생 아래 이름이 붙는 게 미안하기도 했는데 어머니상에는 이렇게 해야겠다고. 속된 말로 아들 없는 집은 부고장 쓸 때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초등학생의 맞절과 영정사진
분향실 맞절도 그렇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친손자 남자 아이라는 이유로 조문객 맞절을 시킨다. 반나절 지나니 애가 거의 초죽음이 되었다. 내가 “아동학대”라는 단어를 썼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 너는 유족쉼터 들어가 있어라 내가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아들이고, 장손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맞절을 계속하는 게 맞나,아직도 모르겠다.
운구를 실고 영정사진 들고 다니는 것도 아들손자가 해야 한단다. 그 어린 아이에게 죽은자의 사진을 들고 운구차로 가는 게 맞나. 내 조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외손자는 왜 영정사진 들면 안 되나. 머리 굵고 미성년자 딱지를 뗀 남자 청년이 세 명이나 있었다. 외손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 할머니 영정 사진을 맡겨야 하나. 만약 아들 손자가 친손자에서 없으면 어쩔건데.
묘비에 들어가는 딸의 이름들
묘지로 와서도 같은 일은 반복되었다. 그나마 엄마의 학성이씨를 쓰는 것으로 안도가 되었다. 그 아래 이름은 아들부터 써 내가려는. 거기에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하기엔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이틀 장례를 치루면서 나도 기운이 빠져서 설득할 힘이 없었다. 그래도 부고장과 전광판에서는 장례 치르기 전이라 그나마 기운이 남아 있었던 것이지.
회사에서의 조부모 범위
우리집 아이 일터에서도 원래 조부모는 친가만 되는데 특별히 너만 외가라도 장례 휴가가 된다고 했단다. 아이는 회사내규를 찾아서 이미 확인했다. 그 문항에 ‘조부모 장례때 3일 휴가’라는 문항이 있었다. 설마 그 문항을 외조모는 안 된다로 이해하냐고. 그러면 문해력 바닥 아니냐고 나한테 되묻더라. 아이는 할머니 장례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남성여성의 차이를 피부로 이해하고 갔다. 30대 남성이 격렬하게 바라 본 부조화 현장이었다.
애도기간
그렇게 장례는 끝이 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지인이 <죽은다음>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었다. 그 책을 읽으며 내 방법으로 애도를 하려고 한다. 이렇게 시간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