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카페에서

공감선유_공간이 조용히 나를 회복시켰다

by 동메달톡

공간이 말을 걸어올 때

공간에는 힘이 있다는 말을, 오늘은 몸으로 느끼고 돌아왔다. 군산 공감선유를 다녀온 하루는 단순한 방문이라기보다 마음의 결을 한 번 고르게 다듬고 온 시간에 가까웠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무언가를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졌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이 천천히 가슴 아래쪽에서 풀려 올라왔다.



공감선유_바람따라29.JPG



이름을 알기 전부터 시작된 여운

이곳이 백희성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돌아와서야 알았다. 몇 년 전 읽었던 그의 책 《보이지 않는 집》 덕분에 이름만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래서였을까. 공간에 머무는 내내 설명하기 어려운 뭉클함이 반복해서 나를 건드렸다. 기쁨이라 말하기에는 조용했고, 감동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깊은 감정이었다.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이 마음은 오늘 안에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 감정을 내일로 미뤄 두기로 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 중에, 건축이 있었다

공간을 걷다 보니 문득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건축을 들여다보는 일, 공간의 구조를 보고 빛이 머무는 자리를 바라보며 그 안을 지나갈 사람들의 움직임을 상상하던 시간들. 잊고 지냈던 기억이 한 겹씩 올라오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것은 그리움에 가까운 감정이었고, 동시에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래, 내가 좋아했던 것들 중에는 분명 건축이 있었다.



공감선유_동메달톡 (2).JPG


기억의 한 올을 붙잡고 도착한 곳

사실 이 공간의 이름은 처음부터 선명하지 않았다. ‘군산 문화비 카페’, ‘입장료를 받는 카페’ 같은 단편적인 기억만 남아 있었고, 어디선가 스쳐 지나간 인상 하나만 마음에 남아 있었다. 기억의 한 올을 붙잡고 검색을 거듭한 끝에, 결국 닿은 이름이 공감선유였다. 군산의 끝자락, 옥구. 전주로 향하는 길목이라 세종에서 가기엔 방향이 거꾸로였고, 들어가는 길도 꽤 외졌다. 하지만 그 외짐마저 이 공간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마치 아무에게나 쉽게 허락되지 않기를 바라는 장소처럼.


공감선유_동메달톡.JPG
공감선유_바람따라20.JPG
공감선유_바람따라26.JPG



처음으로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공감선유에는 갤러리와 건축, 빛과 그림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었다. 몇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렌츠 클로츠라는 화가의 작품 앞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1957년작부터 2002년작까지 이어지는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니 선과 색의 흐름 속에서 작가의 내면이 조용히 드러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묘했고, 솔직히 말해 잠시 소름이 돋을 만큼 깊이 스며드는 감각이었다.


그중 한 작품이 유독 눈에 오래 걸렸다. 판매가는 1천만 원. 이상하게도 ‘비싸다’는 생각보다 ‘여유가 되면 사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처음이었다. 가방도, 물건도 그렇게까지 갖고 싶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처음으로 그림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조용히 생겨났다. 그것은 소유에 대한 욕심이라기보다, 어떤 순간을 오래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공감선유_동메달톡 (3).JPG


공감선유_동메달톡 (4).JPG


길을 나서며 다시 얻은 힘

갤러리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외부로는 스피커를 빼 두어 산책길에서도 소리가 이어졌다. 소복소복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빛이 스며드는 건물 사이에서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정말로 치유 받고 온 느낌이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행복할까 싶을 만큼,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길을 나설 때마다 위로를 받고, 다시 힘을 얻는다. 그래서 내년에는 조금 더 자주 나서 보기로 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다. 이렇게 공간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는 걸, 이미 몸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공간의 힘. 오늘은 그 말을 조용히 믿게 된 하루였다.

공감선유_동메달톡 (5).JPG
공감선유_동메달톡 (6).JPG
공감선유_동메달톡 (7).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빈티지가 빈티지 되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