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썰매 타는 아이들

베를린의 겨울

by 베를린플레이크

겨울이어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별로 없는 베를린. 그런데 올 1월에는 눈이 여러 번 왔고, 기온이 계속 영하로 떨어지면서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였다. 자동차마다 치우지 않은 눈이 지붕 위에 3센티미터씩 쌓였고, 하얀 눈길도 그대로다. 차가 다니는 도로는 깨끗하지만,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빙판길이 되었다. SNS에서는 계단 난간을 붙잡고 줄줄이 내려오는 사람들, 빙판길에 미끄러지지 않고 걷는 법 등이 떠돌아다녔다. 하얀 눈 세상이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 아니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최근 몇 년 동안 베를린에 이런 겨울은 없었다.


눈이 쌓이면 베를린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이 하나 있다. 공원 둔덕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이다. 집집마다 있는 썰매를 끌고 제일 가까운 공원으로 가서 해 질 때까지 썰매를 탄다. 공원마다 까르르 까르르 웃음이 넘쳐나고, 꺅꺅 비명소리도 같이 미끄러져 내려온다.

“아니 어떻게 집집마다 저런 썰매가 있지?”

모두가 ‘공구‘라도 한 듯,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똑같이 생긴 나무 썰매가 있다. 독일 썰매는 생김새도 예쁘고 아주 단단해 보인다.


베를린에 살기로 작정하고 온 2019년 겨울, 공원에서 썰매 타는 아이들을 보고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도심 한 복판, 동네마다 썰매를 타는 아이들이라니. 이런 광경을 본 건 한국에서 30년도 더 되었다.

어렸을 적엔 물론 나도 썰매를 탔다. 꽁꽁 언 논두렁에서 삼촌이 만들어준 나무 썰매를 탔다. 썰매에는 칼날이 달렸고, 두 개의 쇠꼬챙이가 박힌 나무 막대기로 양 옆을 콕콕 찍어가며 탔다. 어떤 아이들은 쌀자루 포대를 가져와서 탔다. 삼송리(지금은 삼송동이 된) 살던 시절엔, 논이나 밭이 얼면 겨울 동안에만 그곳을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어 장사를 하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입장료라봐야 500원도 안 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보광동 살 때도 집 골목에서 썰매를 탔다. 아이들은 갈색 '고무다라' 안에 앉아서 비탈진 골목길을 내려왔다. 동네에서 썰매 타는 풍경은 십 수년 전에 멈췄다. 이제 서울 어디에서 그런 풍경을 볼까? 요즘 시대에 눈썰매장은 보통 스키장에 딸려 있으니 차로 몇 시간은 달려야 하고, 도심 속에 있다 해도 놀이공원 안에 있으니 눈에 잘 띄지는 않을 것 같다. 동네 언덕진 길에서, 공원에서 썰매 타는 아이들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다. 베를린에서 신나게 썰매를 타는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어릴 적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같이 웃음이 나고, 나도 한자리 껴서 타보고 싶다. 유치원 다니는 꼬마들 뿐만 아니라 십 대들, 엄마 아빠도 다 같이 타니까 못 탈 것도 없겠다.


번번한 놀이공원 하나 없는 베를린에는 이처럼 자연 속에서 돈 안 들이고 노는 게 일상이다. 여름에는 호숫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겨울에는 언덕진 공원에서 썰매를 탄다. 아이들만 그렇게 노는 것도 아니다. 수심이 낮은 강이나 샤를로텐 부르크 성 앞의 호수에서는 어른들도 열심히 스케이트를 타더라. 이건 강이 꽝꽝 언 올 겨울에 처음 알았다.

여기저기 쌓인 눈 덕분에 올해는 칙칙하고 못생긴 베를린의 겨울이 모처럼 예뻤다. 하얗고 차갑고 안개가 끼는 베를린. 지금은 16년 만의 한파로 꽁꽁 얼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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