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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먹은 토스트

‘살다 보니 이렇게도 적응을 하네’

by 베를린플레이크

늦은 점심으로 야채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집에 있던 재료- 당근과 양파와 버섯-을 먼저 볶다가, 얼려 놓은 밥을 해동해 같이 넣고 볶았다. 너무 센 불에서 볶으면 밥이 팬에 눌어붙어 타기 때문에 중불에서 수분이 날아갈 때까지 느긋하게 오래 볶았다. 늦게 점심을 먹고 나니 저녁 7시가 지나도 저녁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침에 먹을 무슬리와 하퍼밀시(오트 밀크)를 사러 에데카에 갔다가 훈제 연어와 비건 살라미, 베엌케제(Bergkäse)를 사 왔다. 저녁으로 간단히 토스트를 구워 버터를 바르고 베엌케제와 루꼴라, 비건 살라미, 훈제 연어를 차례로 얹은 다음 홀스 레디시 크림(Meerttlich Sahne)을 발라 먹었다.

으음,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홀스레디시 크림이 제대로 한몫을 했다. 어제 마시고 남은 뷔르템베르크 산 화이트 와인도 한 잔 따랐다. 토스트 한 개를 저녁으로 먹었을 뿐인데, 맛있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있는 재료를 넣어 열심히 토스트를 만들고 있는 남편 옆에서 어깨춤을 추면서 토스트를 또 한 입 베어 물었다. 이 행복함은 정말 토스트의 맛일까, 아니면 몇 잔 따라 마신 와인 때문일까, 아니면 내 옆에 있는 짝의 든든함 덕분일까.


베를린에 와서 처음 명절을 맞는 몇 해는 늘 허전한 마음이 들어서 뭔가를 더 챙겨 먹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렇지 않으면 왠지 외롭고 초라한 기분이 들어서. 친한 친구집에 모여 명절 느낌을 내거나, 못하는 음식이지만 떡국을 끓여 먹거나, 하다못해 중국집에 가서 훠궈를 먹으며 베를린의 내 가족끼리 추석이나 설날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뭘 챙겨 먹어야지 하는 마음도, 누구를 부러 만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추석 당일에는 저녁으로 집에서 연어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고, 어제는 레베에서 5유로짜리 훈제 고등어를 사다가 데워 먹었다. 그리고 오늘은 연어와 루꼴라를 넣은 토스트.


두 달 전이었던가, 저녁으로 혼자 토스트를 먹은 적이 있었다. 남편은 집에 없었고, 혼자 뭔가를 요리해 먹기도, 끓여 먹기도 귀찮아서 그냥 집에 있는 토스트에 남은 치즈와 살라미를 얹어 먹었다. 참 단순한 맛이었다. 접시에 놓인 빵 조각을 보다가, 문득 '내가 독일에 꽤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있을 때 아주 가끔, 저녁을 이렇게 토스트로 먹을 때가 있긴 했지만, 그 때도 주로 먹은 건 남편이었고, 나는 라면 먹는 걸 더 좋아했다. 아침이나 점심을 빵으로 먹긴 해도 저녁은 늘 밥이나 국물 있는 음식 등 짭짤하고 간이 된 한끼를 먹어야하는 사람이었다. 토스트를 저녁으로 그것도 혼자서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간장에 밥을 비벼 먹으면 먹었지, 저녁으로 빵 쪼가리를 먹다니.


‘살다 보니 이렇게도 적응을 하네.’

하얀 접시에 놓인 빵 조각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초라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무 특별할 것도 없는 저녁이었지만, 내게는 그날 저녁이 뭔가 베를린 생활의 한 전환점처럼 느껴졌다. 앞으로도 못 살진 않겠구나, 그런대로 살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 더불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입맛도, 취향도, 습관도 언제나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 늘 새로운 순간순간을 맞고 적응하고 때론 영원히 좋아하지 않을 것 같던 것들도 즐기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것.


오늘 저녁, 토스트 쪼가리를 먹으면서 행복함을 느낀다는 게 기분 좋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생활에 만족하고, 없는 것에 불평하지 않고, 이런 소소한 한 끼에도 맛있어하고, 어깨춤을 출 수 있다는 것.

그게 추석임에도 불구하고.



*토스트 쪼가리를 먹고 있던 중, 마침 라디오 아인스에서 나오는 한 노래가 귀에 들어왔다. 제목은 ‘Crossfade’.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트윈픽스>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곡이었는데, 쾰른 출신 여가수 스테파니 슈랑크(Stefanie Schrank)의 곡이었다. '이 주의 앨범 코너'에 그녀의 <Forma> 앨범이 소개되고 있었다. 앨범을 설명하는 글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 위의 글을 쓰고 있던 나의 감정, 생각과 우연으로 치기엔 너무 통하는 구석이 있어서.

"앨범 <Forma>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얻은 놀랍도록 정확한 관찰을 발견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삶의 질문들과 철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슴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새롭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변화의 과정은 우리 삶의 토대입니다. 이 앨범은 아무것도 고정되어 있거나 항상 같은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항상 생성의 과정에 있다고 믿었던 질 들뢰즈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정된 정체성으로 도피하는 것은 비논리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실제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고요. 우리 세포만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새롭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슈테파니 슈랑크의 동명 노래에서 표현했듯이 '변신하는 존재(Shapeshifter)'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dd4eA9KIw&list=RDEcdd4eA9KIw&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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