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먼스 오픈과 크로이츠베르크
베를린에 '베프'가 산다. 우린 서울에서도 '베프'였다. 대학 입학식에서 처음 인사를 한 후 30년 '인생 친구'가 되었다. 그런 베프와 지금은 타국의 도시에서도 같이 살고 있다. 가끔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하다. 이 정도면 정말 운명이지 싶다.
10년 전 둘 다 서울에서 살던 시절엔 작은 바도 함께 운영했다. 경리단 뒷골목에 아지트를 삼자고, 그동안 우리가 술집에 갖다 바친 돈만 해도 집 한 채는 뽑을 거라고, 그러니 우리가 열어서 친구들을 불러 같이 놀자고 연, 순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만든 바였다. 여행작가로 살던 나는 시간이 자유로웠고, 오랜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자 했던 친구에게는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바의 이름은 '식스먼스 오픈'(six months open). 6개월만 일하고 6개월은 놀자는 바람으로 오픈한 바였다. 5년을 열었고, 6개월만 열자는 바람과는 달리 일 년 열두 달 열었다.
이름의 아이디어는 베를린을 처음 왔을 때 갔던 바에서 얻었다.
슈프레 강가에 '바 25'(지금은 Holzmarkt 25가 있는 자리)란 바가 있었다. 당시(2007년) 진정한 베를린의 밤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고, 로컬들의 레전드로 통하는 바였다. 사람들은 금요일 밤에 들어가면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나온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바 25 안에는 온종일 춤을 출 수 있는 야외 바와 허기진 배를 채우는 레스토랑과 잠을 잘 수 있는 호스텔까지 있었다. 그 안에선 여행가방을 들고 다니는 히피 여행자도 흔했다. 바는 5월에서 10월까지만 문을 열었다. 주인들은 겨울이 되면 모두 문을 닫고 따뜻한 나라로, 터키로, 발리로 여행을 갔다. 그렇게 여행을 하며 경험한 시간과 영감을 돌아와서 다시 이곳에 풀어놓는다고 했다. 2007년에 주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거의 문화충격을 받았다. 휴가 일주일도 눈치 보며 겨우 쓰는 한국인에게 이들의 삶은 너무 유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세상엔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세상엔 이런 공간도 있구나' 당시 베를린 곳곳을 여행하며 여러 번 느꼈다.
친구와 내가 '식스먼스 오픈'을 이름으로 정할 때 여러 이름 후보 중에는 '크로이츠베르크'도 있었다. 베를린을 처음 여행할 때 나는 크로이츠베르크에 사는 한 친구 집에서 머물렀는데, 당시 저렴한 집세 덕분에 젊은 작가들이 크로이츠베르크에 많이 모여들었다(지금은 크로이츠베르크, 노이쾰른을 거쳐 베를린 근교의 브란덴부르크 지역으로 나가사는 추세다. 요즘 베를린 집값은 한마디로 미친 상태...). 아무튼 당시 크로이츠베르크는 테크노클럽, 그라피티, 아방가르드한 숍들이 많은 서브컬처의 중심지였다. 당시에는 서울의 초기 홍대 같은 힙하고 언더그라운드 한 바이브가 넘쳤기에 나는 크로이츠베르크 동네를 무척 좋아했다. 핫하게 떠오르기 시작한 미테보다 나는 거칠고 언더그라운드 한 감성이 넘치는 크로이츠베르크를 더 사랑했다.
그래서 크로이츠베르크란 이름으로 바를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자꾸 듣다 보면 익숙해질 거고, 우리의 바를 소개하기에도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는 달랐다.
"뭐? 크.... 크...크로이크?? 이름 너무 어렵지 않아? 와, 이건 정말 아무도 못 읽겠다. 바 이름은 듣기도 쉽고 부르기도 쉬워야 하지 않을까? 난 이 이름은 정말 아닌 것 같아."
굵직한 미국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경력을 쌓고, 지사장까지 했던 친구는 이 이름만은 단호히 안 된다고 했다. 이름을 정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고, 둘이 '식스먼스 오픈'으로 마음을 굳히고 나서야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를 열고 얼마 안 돼서 친구가 연애를 시작했다. 바에 놀러 오던 긴 머리 남자와 연애를 하더니 6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6개월 일하고 6개월 놀자고 열었더니 6개월 만에 결혼을?!! 그러더니 어느 날엔간 베를린에서 둘이 1년만 살아보고 오겠다며 훌쩍 떠났다. 그러곤 둘이서 가서 산 곳이 '크로이츠베르크'였다! 크로이츠베르크에 '크'자도 모르던 친구가, 베를린에는 가본 적도 없는 친구가, 나도 발음하기 어려운 휴어브링어(Fürbringer) 스트라세에서 살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베를린은 가본 적도 없는 그녀가 가서 살고, 베를린 책까지 내고 뻔질나게 오가던 나는 서울에 남는 그런 것. 0.1초쯤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던가.
하지만 단짝 친구가 살고 있는 베를린은 또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친구를 만나러 베를린을 다녀온 뒤로는 더더욱. 내가 지금껏 사랑했던 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다시 베를린을 사랑하게 되었다. 2016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