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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플레이크 Jan 13. 2021

독일에서 새해를 보내는 방법

베를린 다이어리 

“독일에선 새해에 뭐해? 한국에선 부모님께 세배하고 아이들은 돈 받고, 큰 자식들이면 부모님께 돈 드리고. 그리고 가족들이 다 모여서 떡국 먹어.”


새해마다 가족과 보내던 아침이 이젠 사무치게 그리운 시간이 됐다. ‘떡국’ 이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떡국은 또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소고기 반, 물 반일 정도로 푹 넣고 끓인 고기 국물에 혀가 착착 감기던 엄마 표 떡국도 베를린에선 먹을 수 없다. 그래도 육개장 국물로 만든 이상한 떡국 안 사먹고(작년에), 올해는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은 것만으로도 새해를 두 배는 잘 시작한 기분이다. 할 줄 아는 음식이 늘어갈수록 퍽퍽한 외국살이도 조금씩 야들야들해지는 기분이다.  

 

“독일에선 특별하게 뭐 하는 게 없는데... 그냥 산책해.”

그래서 우리는 지난 1년 내내 했던 것처럼, 또 1월 1일부터 공원에 가서 산책을 했다. 이도 안 닦고 세수도 안 하고 부라자도 안 하고 겉옷만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4시가 넘으면 도시는 캄캄해지고, 한밤중 같은 어둠에 휩싸이므로. 마음은 2시부터 급해진다. 가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러 시나몬 롤도 하나 샀다. 남자친구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베를린에서도 새해에 먹는 게 있긴 해. 도넛 같이 생긴 건데, 베를리너 판쿠흔(Pfannkuchen)이야베를린에선 이 도넛을 판쿠흔이라고 부르지만내가 자란 독일 남부에선 판쿠흔은 그냥 팬케이크를 말하거든그래서 이 도넛을 말할 땐 판쿠흔을 안 붙이고 그냥 베를리너라고 불렀어그런데 베를린 사람들이 이 빵을 부를 땐 굳이 베를리너를 붙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 판쿠흔이라고 부르는 거지.” 

독일 지방에 따라(베를린과 독일 동부에서는 판쿠흔, 독일 서부와 남부에서는 베를리너라 부른다), 베를리너 혹은 판쿠흔이라 부르는 이 도넛은 우리에겐 던킨 도넛과 비슷한 모양새다. 가운데 구멍은 없고, 안에는 과일 잼이 들어 있다. 도넛 위에는 두꺼운 설탕 아이싱이나 파우더가 뿌려져 있다. 판쿠흔은 전통적으로 질베스터(새해 전야)나 로젠몬탁(사순절 전 월요일) 등 카니발 데이에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의미로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1년 내내 먹는다.) 


원래는 자두 잼을 넣는 것이 정석인데, 요즘은 살구나, 딸기, 오렌지 마말레이드 잼을 넣기도 한다. 여러 개를 사는 경우, 겨자가 들어간 판쿠흔도 슬쩍 한 개 끼워둔다. 이 겨자잼(?)을 먹는 사람이 최고의 행운을 갖는다는 농담 때문이다. 행운이 찾아온다니 베를리너들도 아무리 코가 알싸해져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먹지 않을까? 재미 삼아 다음엔 아이들과 함께 먹어봐야겠다.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해서 오래 걸었다. 공원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정초에 산책하는 게 정말 풍습이기라도 한 것처럼, 유모차를 끌고 온 아빠,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꼬마, 함께 걷는 커플 등 모두 각자의 산책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살다 보면 알게 된다.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이렇게 많이 걷는다는 걸, 한겨울에도 공원 가는 건 당연한 일상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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