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에게만 가치 있는 이야기.

'자충수'같은 글쓰기.

by 이동민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는 그것이 계속 머물러 있을 때가 있다. 자고 일어나서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초등학교 때 유난히 나를 못살게 굴던 어느 녀석처럼, 잊으려고 노력하면 더욱 새겨지는 안 좋은 기억과도 닮아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요즘 시간을 정해 글을 쓰고 있는 만큼 '아 이거 글로 적어 남기고 싶은데 말이야...'라고 고민하지만 이내 망설이게 된다. 초등학교 때의 그 녀석쯤이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가볍게 무시하거나 혹은 가능한 한 나 역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줄 자신이 있건만, 이 생각은 그렇지가 못하다.


별다른 이유가 아니다. 이 맴돌고 있는 생각에 대해 '글로 풀어낼 자신이 없다'라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오늘날의 많은 아마추어 에서이 작가 지망생(?)들의 큰 고민은 '오늘은 무엇을 써야 하지'라고 한다. 그러니까 글을 쓰기는 써야겠는데 쓸 소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좀 다르다. 글로 적고 싶은 소재는 명확한데, 도무지 생각해보아도 이것에 대해 잘 써 내려갈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만약 개인적인 일기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겠다. 하지만 나는 브런치나 인스타에 글을 올리고 싶고, 때문에 가능한 한 잘 쓰고 싶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잘 쓴다는 것은 문장의 수려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딱 맞아떨어지는 주제를 내포하는 것도 아니다. 읽는 이의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글에서 풍기는 감성의 과잉이 싫다. 싸구려 향수 내음이 진동하는 듯한 세일즈맨의 푸념도 싫고, 한마디 잘못하면 눈물을 그렁그렁할 것 같은 문학소녀의 고백도 싫다. 나는 단지 저항 없이 읽히는 문장이 좋고, 독자가 자연스레 끝까지 읽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이것을 두고 누군가는 '이 무슨 바보 같은 고민인가'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바둑기사 '조치훈'은 바둑의 정의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바둑은 아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다, 그러니 바둑을 모르는 사람에게 바둑을 가치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이다. 나는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이것은 감히 독자에게 '바둑과 글쓰기에 대해 모르다니.. 쯧쯧...'이라고 조소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바둑이 되었던 글쓰기가 되었건 그 의미는 주체가 되는 사람에게나 중요하지, 바둑을 두지 않거나,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굉장히 바보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이 맞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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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에 조치훈의 이야기를 꺼내었으니 한마디 더 그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글은 또 이렇게 산 넘어 바다로 간다. 어쨌든 '목숨을 걸고 둔다'라는 표어를 가진(그는 직접 그 말을 증명하기도 했다.*1) 조치훈은 젊은 시절 대국에서 지는 일이 있으면 엉엉 울면서 집으로 향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바둑 기사 중 한 사람이 경기에 졌다고 아이처럼 울면서 떠나가다니 '이거 영 체통이 서지 않는 일이군'이라 생각할 법도 한데, 이제 나이가 든 그는 라이벌 조훈현을 향해, "바둑으로는 이기지 못하니, 골프라도 같이 나가 이겨야겠다."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역시 그릇의 크기가 남다르다고 할까.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의 나는 이 정도의 흐름에서 '조치훈의 바둑'과 '글쓰기'를 연계시키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하지만 이 글의 세 번째 문단에 나 스스로가 '딱 맞아떨어지는 주제를 내포하는 것도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적어놨으니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야말로 바둑에서 말하는 '자충수'가 아닐까. 그렇지만 나는 솔직히 지금 이렇게 글을 끝내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 어느새 이 풀리지 않던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내 머릿속에 계속 머물러 있던 생각은 사실 '조치훈에 대한 일화들'이었고, 어느새 나는 다 이야기한 것 같으니까. 히히.





*1. 조치훈은 1986년, '고바야시 고이치'와의 대국을 10일 앞둔 시점에서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그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머리와 오른손이 있다"라는 명언을 남긴 채 대국에 임한다. 휠체어를 타고 대국을 치러냈기에 이는 [휠체어 대국]이라 불리며 일본 바둑계의 전설로 남는 일화가 되었다. 결국 2대 4라는 점수로 조치훈은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지만, 그의 엄청 난 투혼으로 인해 승자보다 훨씬 더한 찬사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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